[‘차이나 러시’ 이후]<상>‘인건비 빼먹던 시대’는 끝났다

  • 입력 2007년 10월 3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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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중국 칭다오에서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주관한 ‘중국진출 기업 경영 애로 해소 교육’이 열렸다. 중국 세제, 법률, 토지, 환경 분야로 나눠 진행된 이날 강의에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인 수백 명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중소기업진흥공단
29일 중국 칭다오에서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주관한 ‘중국진출 기업 경영 애로 해소 교육’이 열렸다. 중국 세제, 법률, 토지, 환경 분야로 나눠 진행된 이날 강의에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인 수백 명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중소기업진흥공단
中정부 “한국서 고부가가치 업종 갖고 와라” 고자세

《# 사례1

24일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 액세서리 공업단지에 있는 S사 공장.

한국 액세서리 공장이 대거 몰려 있는 이곳의 한국인 중소기업 사장들은 폐허가 된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S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1990년대 한국에서 건너와 공장을 세웠던 이 회사 사장은 올 8월 말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른바 ‘야반도주’다.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과 그 가족, 거래업체 사람들이 몰려와 난장판이 됐다. 공장을 안내한 한국 진출업체 ‘샤인 주얼리’의 설규종 사장은 “저가 액세서리 분야는 중국 기업의 성장으로 한국 업체들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적자가 나서 사업을 접고 싶어도 중국에서는 청산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사장이 구속될 우려가 있어 야반도주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사례2

최근 톈진(天津)의 한국 업체 공장에는 중국의 거래은행 사람들이 나와 사업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일이 잦다. 가발 임가공을 하던 H공예품, 휴대전화 부품업체 S사, 전자부품업체인 D사의 사장이 갑자기 사업을 포기하고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들 공장 주변에는 채권자들이 지금도 자주 몰려든다. 한인 상의의 한 관계자는 “한국 중소기업인들이 ‘고용을 창출해 주던 영웅’에서 눈총을 받는 요주의 인물로 전락할 위기”라고 한숨 쉬었다.》

○ 무너지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중국 진출 한국 기업 가운데 최근 경영 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된 업종은 중국의 싼 인건비를 이용해 단순 임가공을 해서 다시 해외로 수출을 해 온 회사다. 문제는 중국에 진출한 4만여 개의 중소기업 중 80%가량이 ‘인건비를 따 먹는’ 임가공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봉제, 완구, 액세서리, 피혁, 염색, 단순 전자부품, 악기 업체들이 대부분으로 칭다오, 옌타이(煙臺), 웨이하이(威海), 다롄(大連), 톈진 등 중국 동부 연안 지역에 몰려 있다.

칭다오에서 한국 기업의 수출을 대행하는 변재서 관세사는 “중국 인건비와 원자재 값의 급상승, 4대 연금 확대, 달러화 약세 등으로 가공무역업체의 영업 환경이 감당하기 어려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며 “최근 2년 사이 한국 기업은 원가구조가 30%가량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금년 들어 산둥 성에서만 한 달에 수십 개 업체가 문을 닫고 있다”며 “앞으로 2, 3년 안에 임가공업체들은 인건비가 더 싼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거나 베트남, 미얀마로 공장을 옮기거나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중국 기업의 급속한 경쟁력 상승이다.

공장 근로자의 임금이 올랐다지만 중국은 아직도 한 달에 10만∼13만 원 수준으로 한국보다는 훨씬 싸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상승하면서 기술 수준은 비슷하면서도 한국 업체보다 물건을 30%가량 싸게 내놓고 있다. 해외 바이어의 발길은 중국 기업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 중국 기업의 맹렬한 기술 추격

중국 기업의 기술 습득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장쑤(江蘇) 성 쑤저우(蘇州) 시에서 안경렌즈 제조 및 코팅을 해 온 영산광학 최준호 사장은 “한국이 일본에서 안경 관련 노하우를 배우는 데는 20년이 걸렸지만 중국은 5년 만에 따라왔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한국 안경산업의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가서 곁눈질을 하거나 몸으로 기술을 체득했다. 그만큼 기술 습득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의 첨단업체들이 시장을 노리고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직접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다.

최 사장은 한국의 설비 업체도 원망스럽다.

한국의 생산설비 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해 최신 설비를 깔아 주고 각종 노하우까지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은 한국 업체에서 숙련된 기술자까지 빼내 간다. 환경 때문에 3, 4년 전까지 중국에서 최고 기업으로 인정받던 영산광학은 이제는 평범한 업체로 전락할 위기다. 영산광학은 지금 액세서리나 자동차 부품 코팅업으로 업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800여 개 액세서리 업체가 집중된 칭다오에는 한국인이 세운 액세서리 전시장이 있다. 하지만 가장 고급품인 패션 액세서리는 아예 전시를 하지 않는다. 전시 하루 만에 모조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라키 마사아키(荒木正明) 칭다오 일본 JETRO 대표는 “선진국 추월을 위해 달려온 한국 기업은 추격자를 따돌리는 전략은 없어 너무 쉽게 귀중한 노하우를 중국 기업에 넘겨줬다”며 “한국 기업은 비교우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 내몰리는 한국 기업

중국 정부도 이미 중국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업종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에 내륙으로 들어가거나 사업을 철수할 것을 노골적으로 종용하고 있다.

칭다오 시 대외투자 담당 뤼광후이 과장은 “전자, 자동차, 물류, 조선, 철강 등 고부가가치업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를 환영한다”며 사실상 저부가가치 업종에 대한 투자 유치는 끝났음을 시사했다.

백인기 KOTRA 다롄 무역관 차장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통상 압력을 많이 받고 있는 중국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봉제나 완구, 신발 등 저부가가치 산업을 억제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산업 쪽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하려는 경제 정책 목표에도 맞지 않는 만큼 앞으로도 이들 산업에 대한 규제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중국 내륙으로 생산기지를 옮겼지만 실패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물류비가 너무 많이 들고 인력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칭다오 시에서 전자부품 공장을 하다 2005년 초 차로 4시간 거리의 내륙으로 공장을 옮긴 김모(57) 사장은 최근 공장을 하청업체에 넘기고 사업을 접었다. 김 사장은 “중국 내륙은 인프라나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19세기에 가깝다”며 “불량률이나 생산성을 따져 볼 때 원가가 칭다오보다 더 높아 도저히 공장을 운영할 수가 없었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최근 진드기가 생기지 않는 라텍스 소재의 매트리스와 베개, 침낭을 만드는 중국 기업의 판매상으로 변신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가 많은 한국에 이 제품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 30여 년간 한국의 수출 역군으로 일해 온 그가 이제는 중국의 수출 역군으로 변신한 것이다.

칭다오·쑤저우=이병기 기자 eye@donga.com

다롄·톈진=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 한국기업의 중국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중국에 진출한 후 사업에 실패한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관념이 사실과 다른 것이 많고 이는 사업 실패로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중국에서는 한국어로 ‘관계’와 비슷한 관시(關係)면 모든 게 통한다는 말도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 중국에서 관시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각종 사회제도가 정비되면서 그 비중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중국 공무원이 자본을 유치할 때는 외국 기업을 상전으로 모시다가 일단 들어오면 안면을 바꾸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의 인건비가 싸다는 것도 생산성 관점에서 접근하면 전혀 다르다.

중국은 업종별로 차이가 나지만 현재 일반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약 9만8000원이다. 국내 평균 임금(90만∼100만 원)의 9분의 1에서 10분의 1 수준이다. 다롄에서 란제리 부자재 회사인 창성물산을 운영하는 임영빈 사장은 “중국에서는 인력난도 심각하고, 생산성에 비해 임금 인상 폭도 크다”며 “한국에선 7명이면 되는 일을 여기에서는 30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생산성이 낮아 인건비가 싸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조선족 교포가 많아 종업원과의 의사소통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물론 말이 통하는 조선족 교포가 있다는 점에서 외국 기업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기업 경영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롄에서 세면대 공장을 운영하는 김도형 굿리빙산업 사장은 “2005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직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공장 관리자를 조선족 교포로 썼지만 시행착오만 엄청나게 겪었다”며 “일본 기업은 사장이나 관리직원을 중국으로 보내기 전 1∼3년간 중국어 및 문화 교육을 미리 시켜 시행착오를 최소화 한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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