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구미공장 ‘상생 현수막’ 노조원이 먼저 움직였다

  • 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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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공단동 코오롱 구미공장 내 체육관 입구에 설치된 현수막. 사측과 노조 공동 명의로 ‘노사가 하나 되어 시민이 사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구호로 내걸었다. 구미=이권효 기자
경북 구미시 공단동 코오롱 구미공장 내 체육관 입구에 설치된 현수막. 사측과 노조 공동 명의로 ‘노사가 하나 되어 시민이 사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구호로 내걸었다. 구미=이권효 기자
‘노사가 하나 되어 시민이 사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최근 경북 구미시 구미역과 간선도로 등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는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 30여 개가 설치됐다.

현수막을 내건 것은 구미의 간판기업인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와 사측. 불과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강성노조’ ‘파업노조’로 통했던 이 회사 노조원들이 ‘투쟁’이라고 새긴 머리띠 대신 노사상생을 선언하고 회사 발전에 노조의 힘을 모으는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코오롱 구미공장 노사는 2004년 이래 극심한 노사 갈등을 빚어 왔다. 그해 8월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충돌해 노조가 64일 동안 파업을 벌였고, 이에 맞선 사측은 직장폐쇄 신고를 했다.

노조는 사측이 지난해 2월 생산직 근로자 78명을 정리해고하자 파업과 소송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전 노조위원장 최모 씨가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자택에 무단 침입해 구속되기도 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올 4월 사측의 정리해고가 “회사의 경영 악화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는 판단을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노조원들 자신이었다. 노조는 조합원 812명(전체 직원 900명) 중 730여 명(투표율 90%)이 참가한 가운데 7월 12일 새 노조집행부 구성을 위한 총회를 열었다. 후보로 출마한 김홍렬(46) 현 노조위원장은 “새로운 노사상생을 마련하자”고 호소해 91%라는 높은 지지율로 선출됐다.

김 위원장은 24일 “더 늦으면 노사가 협력해 회사의 발전을 모색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 같았다”며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몸에 해로운 것을 습관적으로 먹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딱 끊어 버리는 것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새 노조 집행부는 노조 전임자를 종전의 9명에서 5명으로 줄이는 한편 집행부 인원도 31명에서 12명으로 ‘구조조정’했다. 한 명이라도 더 현장에서 회사 일을 맡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것.

또 노조는 90여 개의 거래처 사장들에게 ‘파업으로 큰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 노사가 상생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노조위원장 이름으로 보내기도 했다. 직원 출퇴근용 버스 13대에도 ‘시민 여러분에게 끼친 걱정, 더 큰 도약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대형 스티커를 부착해 운행했다.

노사는 24일 양측 간부를 중심으로 ‘노사상생자원봉사단’을 구성해 회사와 지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공장장인 조희정(54) 부사장은 “국내외의 기업 환경이 여의치 않아 노사가 똘똘 뭉쳐 대처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그간의 갈등을 말끔하게 털어 내고 노조와 함께 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72년부터 가동된 코오롱 구미공장은 매년 1조20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지만 파업과 노사갈등이 심했던 2003년에는 800억 원, 2004년에는 15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구미=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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