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투자 명확한 구분 가능한가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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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5부 요인과 만찬을 하며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당시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라며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고 주식을 사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정부 정책이 부동산 투기를 막고 주식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부동산은 ‘투기’이고 주식은 ‘투자’일까. 노 대통령의 시각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똑같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돈을 넣는 행위가 왜 부동산에서는 ‘투기’로 폄훼되고 주식에서는 ‘투자’로 격상되느냐는 반론이다. 전문가들은 투기와 투자를 명백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학자들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두 영역의 애매모호한 경계에 대해 한 누리꾼(네티즌)은 인터넷에 이런 답을 올렸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

○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발언이 있은 지 닷새 지난 지난달 22일 노 대통령은 개인 예금 8000만 원을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다.

당시 청와대 김만수(金晩洙) 대변인은 “대통령은 최근 시중 여유자금이 아파트 등 부동산 시장에 쏠려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면서 “시중 여유자금이 기업의 기술개발 등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쓰일 수 있도록 자본시장으로 유입되기를 바라며 간접투자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소망과 달리 그가 투자한 8000만 원은 기업의 기술개발 등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공모나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한 주식을 사는 행위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주의 권리를 넘겨받을 뿐이며,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낮은 가격에 사서 차익을 내고 팔려는 행동이며 이는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와 다를 바 없다.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주면 투자’라는 개념은 적어도 주식 투자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것.

또 ‘기간이 장기이면 투자’라는 생각도 잘못이다. 오히려 주식보다 부동산이 투자 기간이 훨씬 긴 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정호(金政鎬) 교수는 “투기와 투자는 상당히 주관적인 개념으로 정의가 어렵다”며 “정부의 정책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것보다 사실상 ‘부동산에서 나오는 이익은 절대 가져가서는 안 된다’라는 포괄적 개념에 가깝다”고 말했다.

○ 시장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국투자증권 강성모(姜盛模) 투자분석부장은 “이해가 가능한 펀더멘털의 변화에 의지한다면 투자에 가깝고, 일시적인 가격 흐름만을 놓고 돈을 건다면 투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부동산에 돈을 넣는 행동 자체가 아니라 ‘펀더멘털의 변화’와 무관하게 가격 흐름만을 보며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라는 것.

이런 개념에서 투기를 막으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최근 문제가 된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가격 급등이 ‘강남의 펀더멘털’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강남의 펀더멘털은 결국 강남에 사는 거주자들이 느끼는 효용과 직결된다.

강남에 몰리는 돈이 아파트 가격 흐름만 보고 몰리는 것이라면 투기에 가깝고, 교육과 주거환경 등 ‘강남 거주의 가치’에 따라 몰린다면 투자에 가깝다는 것.

돈의 흐름만으로 가격이 형성됐다면 강력히 규제하면 되지만 실제 강남의 주거 가치가 그만큼 높다면 규제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고른 교육환경 등 균형 발전을 통해 강남 지역의 사용가치와 다른 지역의 사용가치를 비슷하게 맞추지 않으면 ‘강남 부동산 투자’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이 제 기능을 하느냐 여부도 중요하다. 증시는 다수의 시장참여자들에 의해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주가에 일시적인 거품이 생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업 가치에 수렴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상대적으로 왜곡된 정보 및 투자자의 심리가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한성대 경제학과 이상한(李相翰) 교수는 “부동산 투자는 거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부동산 투자를 모두 투기라고 억제한다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투자까지 억제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세계 투기의 역사: 튤립 뿌리가 황소 30마리 값▼

투기의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은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뿌리 투기다. 튤립이 귀족의 품격을 상징하는 식물이 되면서 뿌리 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등했다.

1636년 한 선원이 남의 집에서 양파를 훔쳐 먹었다. 그런데 그가 먹은 것은 양파가 아니라 황소 30마리 가격과 맞먹는 ‘샘퍼 아우구스투스’라는 튤립 뿌리였다. 선원은 당연히 감옥에 갇혔다.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1700년대 증시 거품의 피해자였다. 당시 기록적으로 주가가 오르던 ‘사우스 시(South Sea)’라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도저히 예측 못하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이 시절 영국에서는 ‘납에서 은을 추출한다’는 회사와 ‘오이에서 햇빛을 뽑아낸다’는 회사의 주가가 급등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땅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을 포함해 거의 모든 국민이 땅을 사재기했다. 영국 여행가 윌리엄 프리스트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은 땅 투기”라고 비꼴 정도였다.

1955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천연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는 믿기 힘든 발표로 주가가 급등했다. 당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 다이아몬드 매출의 갑절까지 치솟았다.

2000년 한국에서는 정보기술(IT) 열풍이 불었다. 매출은 연간 10억 원인데 시가총액은 1조 원을 넘는 기업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최근 ‘솔본’으로 이름을 바꾼 새롬기술은 무료로 인터넷전화를 할 수 있다는 사업 발표에 힘입어 시가총액이 현대자동차와 맞먹는 3조7000억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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