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보험료 ‘교통법규 위반 걸릴때마다 할증’ 논란

  • 입력 2005년 7월 13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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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문모(40·서울 서초구 잠원동) 씨는 최근 하루에 2차례나 교통법규를 위반했다. 한 번은 과속, 한 번은 신호위반이었다.

내년 9월 이후 문 씨의 자동차 보험료는 지금보다 20% 할증된다.

김모(37·서울 도봉구 창1동) 씨는 올해 초 출근하려다 아파트 주차장에 있던 자신의 차가 밤새 심하게 찌그러진 것을 발견했다. 뒷문과 범퍼를 바꾸는 데 70만 원이 들어 보험으로 처리했다.

김 씨는 내년 1월부터 보험료를 10% 더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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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속도 초과나 가해자를 알 수 없는 차량사고에 대한 보험료가 내년부터 크게 오른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가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 도대체 어떻게 바뀌기에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중대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보험료가 내년 9월부터 대폭 오른다.

지금은 위반횟수에 관계없이 5∼10% 할증되지만 앞으로는 한 번 걸릴 때마다 10%씩, 최고 30%까지 늘어난다.

예컨대 연간 50만 원의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3년간 매년 한 차례씩 속도위반을 한다면 10%씩 할증돼 연간 보험료로 55만 원, 60만 원, 65만 원을 각각 내야 한다.

가해자를 알 수 없는 차량사고를 보험 처리하면 지금은 보험료 할인이 3년간 유예되지만 내년부터는 지급 보험금에 따라 △30만 원 이하는 1년 할인유예 △30만 원 초과∼50만 원 이하는 3년 할인유예 △50만 원 초과 또는 사고건수 2건 이상이면 10% 할증된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정준택(鄭埈宅) 팀장은 “늘어나는 보험료 수입은 무사고 운전자의 보험료를 깎아 주는 데 쓰인다”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도 과속 등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 보험료를 최고 100∼220% 할증한다”고 설명했다.

● 모든 운전자가 할증 대상?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거의 모든 도로에 무인속도측정기를 설치한 데다 제한속도가 들쭉날쭉해 대부분의 운전자가 할증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30%까지 할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과속(제한속도보다 시속 20km 초과) 적발 건수는 1138만 건. 자동차보험 가입자 1300만 명이 연평균 한 번 정도 속도위반을 하는 셈이다.

문 씨는 “범칙금에 벌점까지 받았는데 보험료까지 지나치게 할증하는 것은 이중, 삼중의 불이익”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朴用薰) 대표는 “제한속도가 도로설계 속도나 자동차의 성능에 비해 너무 낮은 데다 도로별로도 들쭉날쭉해 누구나 모르고 속도위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보험회사 ‘쉬쉬’

가해자를 모르는 차량사고와 법규 위반 차량에 대해 보험료가 할증되는 것은 각각 내년 1월과 9월부터지만 할증 대상이 되는 사고는 올 1월, 법규 위반은 5월부터 이미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도 보험회사들은 이런 사실을 가입자들에게 고지하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보험료 수입을 무사고 가입자에게 돌려준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손해보험협회 홈페이지에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 “정부와 보험사가 ‘짜고 치는 정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글이 올라 있다.

숭의여대 이민세(李敏世·경영과) 교수는 “2000년 법규 위반 보험료 할증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도 성실 운전자의 보험료를 할인해 주겠다고 했지만 명세를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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