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이후]카드 사용액으로 알아본 생활패턴

  • 입력 2005년 6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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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 시행 이후 목요일 술자리가 크게 늘었다. 쇼핑도 주말 나들이의 여파로 월요일은 줄고 화, 목, 금요일은 많이 증가했다. 본보가 주5일 근무제 시행 1년을 맞아 국내 최대 신용카드회사(회원 2600만 명)인 비씨카드와 함께 작년 4, 5월과 올해 4, 5월의 업종별 요일별 소비행태를 분석한 결과다.》

“할인점 가게 일찍 들어와. 내일 밤 출발하려면 오늘 준비해야지.”

“미안. 오늘 또 회식이거든. 목요일이잖아.”


신용카드회사에 다니는 김승환(金承煥·39) 과장은 가족과 함께 금요일 밤에 종종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 준비는 대체로 부인이 한다.

금요일에 하던 회식이 주5일(40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목요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이젠 금요일에 술 마시자고 하면 실례”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상시 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과 금융회사, 공기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주5일 근무제가 국민의 생활패턴을 바꾸고 있다. 올해 들어 단란주점과 맥줏집, 노래방 등 유흥업소의 매출은 목요일에 가장 많았다. 지난해 유흥업소의 요일별 매출 비중은 수, 토, 화, 금요일에 이어 목요일이 다섯 번째였다.

유흥업소 매출은 작년보다 2.3% 줄었지만 목요일은 17.8% 증가했다.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도 올해 들어 전체적으로는 4.1% 늘었지만 목요일은 17.6%, 금요일은 13.4% 각각 증가했다. 토, 일요일 매출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이마트 은평점 박민숙(朴敏淑) 주임은 “예전에는 혼자 장을 보는 주부가 많았지만 최근엔 가족 단위 고객이 주류”라며 “밤늦게까지 쇼핑 자체를 즐기는 젊은 부부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올해 4, 5월 비씨카드 회원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지난해보다 9.8% 늘었다. 하지만 주말 여가활동과 자기계발이 늘면서 학원과 레저, 여행, 문화·취미 등 주5일 근무 관련 업종의 매출은 34.6∼67.0% 증가했다.

비씨카드 오현택(吳賢澤) 조사연구팀장은 “금요일 밤부터 가족과 함께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며 단조롭던 주말 소비문화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4일 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주5일 근무를 하고 있는 경제활동인구는 약 180만 명.

다음 달 1일부터는 상시 근로자 300명 이상∼100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약 80만 명이 추가로 주5일 근무를 하게 된다. 근로자 260만 명이 토, 일요일 이틀을 쉬는 셈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주5일 근무제 이후]달라진 라이프스타일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미 주말을 겨냥한 1박 3일짜리 해외여행 상품이 인기를 끌고 목, 금요일 쇼핑객이 늘어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6개 키워드로 주5일 근무제 시행 1년을 돌아봤다. 통계는 지난해 4, 5월과 올해 4, 5월을 비교한 수치다.

금요일 ‘집으로’ 공기업에 다니는 이모(42) 씨는 작년 초만 해도 금요일 밤에는 주로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일찍 퇴근하면 TV를 봤다. 하지만 이제 이 씨의 주말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금요일에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일찍 귀가해 가족과 가까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한 뒤 할인점에서 야간 쇼핑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세태 때문에 금요일 외식업 매출은 지난해보다 17.5% 증가했지만 유흥업소 매출은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금요일 오후 7∼11시 TV 시청률은 2.7%포인트 떨어졌다. 이 시간대 지상파 방송 시청률도 5.6%포인트 낮아졌다.

토요일 ‘밖으로’ 토요일 카드 사용액은 오히려 줄었다. 올해 4, 5월 카드 사용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 늘었지만 토요일은 4.4% 감소했다.

주말에 떠나기 위한 준비를 주중에 끝내고 토요일은 이동하거나 여가 활동에 집중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토요일 유흥비 지출은 8.1%, 쇼핑 매출도 0.1% 줄었다.

조용한 월요일 전업주부 고민숙(高民淑·36) 씨는 월요일엔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 때문이다. 그는 “월요일엔 주말에 미뤄둔 집안일을 하거나 그냥 쉬는 때가 많다”고 했다.

할인점과 백화점의 요일별 매출을 보면 월요일은 4.5% 줄었다. 반면 화요일 쇼핑 매출은 15.6% 늘었다. 목요일 증가율(17.6%)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1박 3일…2박 4일 여행사 하나투어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 시행 이후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오전에 떠나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는 동남아시아 여행상품 수가 50% 늘었다.

1박 3일 또는 2박 4일 관광으로 불리는 이 여행의 목적지는 홍콩, 중국, 필리핀, 싱가포르, 일본 등. 특히 1박 3일짜리 ‘도쿄 반딧불’ 여행은 히트 상품이다. 과거 동남아 여행은 주말을 끼고 다녀오는 3박 4일이나 3박 5일짜리가 주류였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올해 괌 승객은 지난해보다 30% 늘었다. 필리핀 마닐라 승객도 28% 증가했다.

하나투어 김희선(金禧鮮) 홍보팀장은 “주5일 근무제 시행 이후 주말 ‘반짝’ 해외여행이 늘어 성수기가 따로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가사 ‘아웃소싱’ 주부가 가사노동을 덜 하는 것도 눈에 띈다.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기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李地平) 연구위원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가사노동을 아웃소싱하는 ‘대체형 소비’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원 정재훈(鄭載勳·39) 씨 부부는 자녀들이 등교하는 토요일 오전 집 부근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간단한 음식을 사와 ‘브런치(brunch·늦은 아침식사)’를 즐긴다.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에는 푸드 코트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외식업 카드 매출은 지난해 대비 14.9%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장혜진(張惠珍) 과장은 “강남점 테이크아웃 매출이 작년보다 15% 정도 늘었다”며 “일요일 저녁 귀가하면서 들르는 손님이 많다”고 전했다.

자기계발 회사원 장윤지(張允芝·27·여) 씨는 올해 초부터 영어학원에 다닌다. 주로 주말반을 수강하지만 주말 여행계획이 있는 달에는 새벽반이나 저녁반 수업을 듣기도 한다.

장 씨는 “주5일 근무제 이후 퇴근 전까지 더욱 집중해 일한다”며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은 외국어 공부 등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YBM어학원에 따르면 토요일 주말반을 수강하는 직장인은 지난해보다 약 30% 늘었다. 자기계발비 명목으로 직원에게 어학교육비를 지원하는 기업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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