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할인점규제 완화 움직임… 중소상인 거센 반발

  • 입력 2005년 5월 2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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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의 묘수는 없을까.’ 대형 할인점들이 중소도시까지 침투해 들어가면서 중소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산업자원부가 할인점의 신설이나 영업활동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11일 입법예고하려 하자 250만 명의 중소상인이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갖기로 하는 등 반발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중소상인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할인점 확산이 소비자에게 유리하고 물가를 끌어내리기 때문에 규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단, 할인점과 중소상인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묘책이 없어 고민이다.》

○ 사라져가는 재래시장과 구멍가게

서울 성동구 성수1가에서 20년째 뚝섬 현대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호원(46) 씨는 4년 전 이마트가 700m 떨어진 곳에 들어서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마트가 생긴 직후 35%가량 떨어진 매출은 이후로도 매년 2%가량 떨어지고 있다. 생활용품은 아예 포기하고 야채나 과일에 집중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할인점은 28개에서 275개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세 소매점은 70만5916여 개에서 62만5986개로 8만여 개가 사라졌다.

대형 할인점은 가격, 쇼핑의 쾌적함과 편리함, 다양한 상품구색에서 구멍가게, 슈퍼마켓, 재래시장에 비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어 중소상인들도 대책이 없는 상태다.

○ 소비자 편익이냐, 중소상인 살리기냐

대한상공회의소가 4월 초 내놓은 ‘통계로 보는 유통개방 10년’에 따르면 대형할인점 등장 이후 생활용품, 의류 및 신발, 내구재의 가격 상승 추세가 크게 둔화됐다. 또 유통업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평균 7.5%로 이전의 평균 5.8%보다 1.7%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중소상인의 시각은 다르다. 임실근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할인점이 가져오는 소비자 혜택은 인정하지만 지방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방 중소도시에 대형 할인점 한 개가 생기면 슈퍼마켓, 화장품, 의류, 신발가게 등 평균 2000여 개의 가게가 피해를 본다. 반면 대형 할인점은 지방에서 번 돈을 서울로 보내기 때문에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

재정경제부와 산자부는 한때 대형 할인점에 주변 상인들을 우선 입점시키거나 상인의 자녀들을 할인점에 취직시키는 방법을 검토했다. 그러나 대형 할인점의 점포는 대부분 직영이고 상인들과 점포 소유자 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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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권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산업연구원 백인수 연구위원은 “1980, 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도 상인들의 반발로 대형 할인점을 규제했지만 결국 중소상인들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며 “최근 미국 영국 일본에서 성공한 중소 상가 구조조정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진국은 지자체와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형 할인점과 겹치는 업종을 피하는 대신 대형 할인점이 유발한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업종을 개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

대형 할인점 옆에 지자체가 돈을 대서 ‘먹자거리’를 만들거나 할인점에 없는 가게를 만드는 방식이다.

백 연구위원은 “외국에서는 지자체가 유통전문가를 채용해 재래시장 및 중소가게 구조조정을 맡기고 상인들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상생의 묘를 찾은 사례가 상당수 있다”며 “개별 상인 차원의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도 지자체들이 해외 성공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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