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칠레 FTA 1년 대차대조표]“서로 남는 장사 했다”

  • 입력 2005년 3월 29일 18시 50분


《4월 1일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년이 된다. 한국은 사상 첫 FTA를 칠레와 맺은 데 이어 싱가포르 동남아국가연합(ASEAN) 일본 캐나다 등과도 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농가가 거세게 반발했던 한-칠레 FTA 발효 1년을 맞아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한국은 1년 사이에 대(對)칠레 수출을 37.7% 늘리며 남미시장 교두보를 확보했다. 칠레도 대(對)한국 수출을 77.9% 늘려 ‘윈윈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들과도 FTA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일 FTA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한미 FTA는 협상 개시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한-칠레 FTA는 ‘윈윈 게임’=지난해 한국의 대칠레 수출은 전년 대비 37.7% 늘어난 6억9000만 달러, 수입액은 전년 대비 77.9% 증가한 18억400만 달러였다.

품목별로는 휴대전화 수출이 전년보다 175.1% 늘어난 6720만 달러로 증가 폭이 컸다. 컬러TV, 디지털카메라, 자동차 등도 수출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한국 상품의 칠레시장 점유율은 2003년 2.98%에서 작년 3.12%로 증가했다.

칠레로부터 수입한 품목 중에서는 포도주의 수입 증가가 두드러졌다. 전년 대비 152.8% 늘어난 880만 달러. 동광(銅鑛) 등 기초 원자재 수입도 90% 남짓 늘어났다. 한국이 수출한 금액보다 수입액이 급증한 것은 수입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원자재 국제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동시다발 FTA 추진=2004년 1월 한-칠레 FTA 국회 비준안이 지연되고 있을 때 김병섭(金炳燮) 당시 통상교섭본부 다자통상과장은 “칠레와의 FTA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다른 어떤 나라와도 FTA를 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칠레 FTA 발효 후 한국은 싱가포르와의 FTA를 타결시켰고 인도 캐나다 ASEAN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일본 등과 FTA를 추진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는 한-캐나다, 한-EFTA 간에는 올해 중 FTA가 사실상 타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ASEAN과도 2009년까지 80% 이상의 품목에서 관세를 철폐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해 FTA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미, 한일 FTA 돌파구 마련해야=한-칠레 FTA는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양국 간 교역 규모가 작아 실질적인 경제 효과는 크지 않다.

반면 일본 미국 등과의 FTA는 한국 통상의 틀을 바꿀 정도로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일 FTA는 일본이 농산물 시장 개방을 꺼려 장기 교착상태에 빠졌다. 한미 FTA도 스크린쿼터 등에 발목이 잡혀 일정조차 불투명하다.

법무법인 광장의 정영진(鄭永珍) 통상전문 변호사는 “한미 FTA 추진을 지렛대 삼아 일본이 한일 FTA 협상에서 변화된 자세를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FTA는 체결 당사국이 아닌 나라에는 교역에서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한미 FTA 추진이 일본에 압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2004년 9월 로버트 졸릭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이 동북아 국가와 FTA를 체결한다면 한국이 일본에 우선하는 첫 대상국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려면 스크린쿼터, 농산물 문제 등 통상 현안에서 진전된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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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농축산물 수입 50% 증가…국내농가 1만2644곳 폐업 신청▼

한국과 칠레가 FTA를 체결한 이후 칠레산 농축산물 수입액이 서서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농림부에 따르면 한-칠레 FTA 체결 이후(2004년 4월∼2005년 2월) 농축산물 수입액은 8064만 달러로 FTA 체결 이전인 2003년 4월∼2004년 2월의 5364만 달러에 비해 50.3% 늘었다.

품목별로 돼지고기 수입액은 같은 기간 3361만 달러에서 5500만 달러로 63.6% 증가했다. 포도주 수입액은 2.5배로 늘었다.

반면 한-칠레 FTA 체결로 수입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됐던 포도는 1.9% 감소했다.

그러나 농림부는 “올해 1, 2월만 놓고 보면 포도 수입액이 226만 달러로 지난해 1, 2월(85만 달러)의 2.7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토마토, 키위, 사료용 사탕수수 등의 수입 규모도 크게 늘었다.

칠레산 농산물과의 경쟁을 우려해 자진 폐업한 농가도 많았다.

농림부가 한-칠레 FTA 체결 후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시설포도, 복숭아, 키위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폐업 신청을 받은 결과 1만2644개의 농가가 폐업을 신청했다.

폐업 신청 농가는 △복숭아 재배 농가 1만1196가구 △시설포도 농가 1145가구 △키위 농가 303가구 등이다. 재배 면적은 1355만 평으로 전체 재배 면적(5518만 평)의 24.6%에 이른다.

농림부 당국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과수 농가가 보상을 받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폐업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추가로 있을 FTA에 대비해 국내 농가의 수익성을 높이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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