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안고 뛴다]<3>전자부품社 우영

  • 입력 2004년 9월 22일 18시 24분


박기점 회장
박기점 회장
《중견기업이 몰려 있는 부산 인천 대구의 공단지역에 가면 을씨년스러운 거리가 많다. 녹슨 공장의 철문 위에 ‘공장 임대’ ‘공장 매각’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도 곳곳에 걸려 있다. 기업가 정신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1977년 창업해 27년간 전자부품 회사의 외길을 걸어 온 ㈜우영의 박기점(朴基漸·60) 회장은 달라 보였다. 그는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닷새가량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본사가 아니라 경기 오산이나 서울 도봉구 창동의 공장에서 24시간을 보낸다.

수시로 공장에서 밤을 새우는 그 앞에서는 기업가 정신의 쇠퇴를 말할 수 없다. 박 회장도 다른 기업인들의 어려움이나 울분을 이해한다면서도 “기업가는 끊임없이 미래를 꿈꾼다. 현실이 어렵다고 꿈을 버릴 때 그는 이미 기업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시들지 않는 기업가 정신=우영은 20여년 동안 거래한 삼성전자가 가장 신뢰하는 협력회사 중 하나다. 1996년 삼성전자가 우영에서 백라이트유닛을 납품받기로 결정한 뒤 제품의 질에 대해 걱정하자 박 회장은 “내가 24시간 공장을 지키면서 품질관리를 한다”며 자신했다.

㈜우영 오산공장 내 백라이트유닛 생산 공정의 모습. -사진제공 우영

며칠 뒤 삼성전자 구매팀은 예고도 없이 오후 11시40분에 우영의 오산공장을 방문했다. 박 회장이 생산라인에서 엔지니어들과 금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심각하게 토의하는 모습을 보고는 박 회장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바로 공장을 나왔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부품인 커넥터 생산업체로 출발한 우영은 1996년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의 핵심부품인 백라이트유닛 독자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LG, 소니, 도시바 등 글로벌 대기업이 우영의 주요 바이어다.

전체 매출의 85%가 이 신제품에서 나오지만 박 회장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년에는 레이저 프린터의 핵심부품인 LSU 개발에 성공해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고 올해는 디지털 인버터 개발에도 성공했다.

대기업이 수출로 외화를 벌어 와도 핵심부품 수입 때문에 많은 외화가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산업구조에서 우영은 눈에 띈다. 우영은 기술국산화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외화를 줄이고 한발 더 나아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길=우영은 외부에서 기술을 사지 않고 스스로 개발한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와 도쿄대 대학원을 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으로도 일한 박 회장은 모든 신기술을 회사 엔지니어들과 함께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개발한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야 다른 기술도 개발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초기 기술을 축적하는 시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요즘에는 다른 부품업체보다 빨리 신제품을 개발하고 바이어의 요구를 빨리 맞춰주는 협력업체가 됐다. 잘 정리돼 보관 중인 수만 건의 실패 사례와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쌓인 엔지니어들의 두뇌와 몸속에 녹아 있는 노하우 덕분이다.

이런 기술력 덕분에 우영은 27년간 큰 규모의 투자 때문에 적자를 기록한 적은 있어도 매출이 줄어든 적은 한 번도 없다. 1981년 9억30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작년에 3012억원으로 커졌고 올해는 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박 회장은 공장 집무실에 있는 야전침대를 자주 이용한다. 이 회사 임동호 전무는 최근 그의 건강을 걱정해 ‘정식 침대’를 들여놓자고 건의했다. 박 회장은 “기술로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일본 유학시절의 맹세가 실현될 때까지는 야전침대에서 자겠다”며 거절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다음은 노사가 벼랑 끝에 몰린 회사를 한마음으로 뭉쳐 살려내 상생(相生)의 미덕을 실천한 기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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