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難 다시 오나]국제 투기수요 가세 ‘9월대란’ 우려

  • 입력 2004년 8월 20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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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놀리는 데도 많습니다. 지금도 마진이 거의 없는데 9월 이후가 걱정입니다.”

인천 남동공단의 동(銅)파이프 제조업체인 J사의 구매담당 이모 부장은 올해처럼 원자재 구하기가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현재 이 부장이 공급받는 전기동 가격은 kg당 3900원(부가가치세 포함) 안팎. 작년 말과 비교하면 800원(26%)가량 올랐다.

올해 초 원자재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뒤 사전에 물량을 비축하려 노력했지만 가격이 높아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비수기인데도 가격이 크게 올라 성수기가 시작되는 가을을 견뎌낼지 걱정이다.

“신용이 좋지 않은 회사들은 물량을 거의 확보하지 못해요. 조달청에서 전기동을 방출한다고 하지만 가격이 시세의 90%에 육박해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철과 비철금속을 중심으로 원자재 가격이 다시 급등하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일부 대기업은 순익 악화를 호소하고 있다. 사정이 더 심각한 중소기업은 물량이 없어 공장을 못 돌리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번 원자재 값 상승은 기록적인 유가 급등과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기업들을 더 힘들게 한다. 하반기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 값 왜 오르나=올해 들어 5월까지 치솟다가 6월부터 주춤했던 원자재 가격이 다시 뛰는 이유는 수요에 비해 국제적인 생산 능력이 크게 줄어든 때문.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 알루미늄 재고량은 142만3225t이었지만 8월 19일에는 77만9600t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전기동도 같은 기간 43만525t에서 11만675t으로 74% 급감했고 납은 1만895t에서 3852t으로 64% 감소했다.

이처럼 재고량이 크게 줄어든 것은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국제 원자재 수요가 크게 줄어들자 세계 주요 원자재 생산 공장들이 대거 폐쇄되거나 공급량을 크게 줄인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원자재 수요가 다시 크게 늘어 수급 불균형이 초래됐다.

상반기에 긴축 정책을 선언했던 중국이 다시 원자재를 비축하고 있고 올해 초 원자재 파동을 겪었던 각국이 비철금속을 중심으로 꾸준히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도 국제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 ‘엎친 데 덮친 격’=유가 상승으로 가뜩이나 고전하던 산업계는 원자재 값 급등이라는 악재(惡材)까지 겹치자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사상 최고의 수주 실적을 자랑하던 조선업계는 이미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18∼68% 줄어 실속 없는 장사를 했다.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선용 후판가격이 회사별로 20∼50% 올랐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용 후판은 선박 건조에 들어가는 전체 원자재 비용의 40∼50%를 차지한다”며 “후판은 아직도 공급 부족 상태여서 하반기 수익성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장기 계약을 통해 원자재를 조달하고 있어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가 부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관련 업계의 관측이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원가 상승 요인을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용 창호나 자동차 부품 등을 만드는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 S금속의 한모 이사는 “건설경기가 악화돼 창호 제작업체들의 가격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운데 알루미늄 가격마저 급등해 원가 수준에서 물량을 납품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잉크 제조회사인 부산 K사의 한 임원도 “솔벤트 값이 너무 올라 납품가격을 맞출 수 없다”며 “내수 물량을 중국 수출로 돌려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상승세 이어질 듯=원자재 값 상승세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당분간 지금과 같은 가격 추이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국제 물가 조사기관인 코리아PDS의 송경재(宋璟載) 차장은 “2000년 이후 국제 원자재 생산 능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당분간 수급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도 20일 내놓은 ‘최근 원자재 가격 동향과 대책’ 보고서에서 “중국의 재고 감소에 따른 수입 수요 증가에 국제 투기 수요까지 가세할 경우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우려가 높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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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기자 koh@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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