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프라자호텔 김영진 “환경친화 실천이 곧 비용절감”

  • 입력 2004년 8월 15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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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라자호텔 시설팀장 김영진 부장은 호텔업계에 환경 경영을 최초로 도입해 전파해 왔다. 그는 “기업들이 환경 경영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부문은 충분하다”고 말했다.-박주일기자
서울프라자호텔 시설팀장 김영진 부장은 호텔업계에 환경 경영을 최초로 도입해 전파해 왔다. 그는 “기업들이 환경 경영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부문은 충분하다”고 말했다.-박주일기자
《‘다른 사람에 앞서서 어떤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그 일을 실행한 사람’을 우리는 ‘선구자’라 부른다.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 시대를 읽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게다가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주어진 일 감당하기에도 힘든 직장인이라면. 서울프라자호텔 시설팀장 김영진(金榮辰·44) 부장은 한국 호텔업계에 ‘환경 경영’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로 통한다.》

1987년 한화그룹에 입사한 그가 본격적으로 환경 경영에 몸을 던지게 된 계기는 92년 유럽의 환경 선진국 시찰이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金昇淵) 회장의 지시로 91년부터 에코(ECO)-2000이라는 환경보전 경영을 내걸었고 계열사별로 환경보전활동 ‘키맨’(책임 직원)을 선정해 연수를 보냈다.

“당시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 이후 국내 제조업체들이 환경을 비용으로 막 인식하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비제조업체에서는 환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저 역시 호텔에서 환경 경영 할 게 뭐가 있을까 회의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미 환경이 기업활동의 중요 부문이 된 유럽의 기업들은 김씨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부동산 거래를 할 때도 토양오염을 측정해 가격에 반영하고 환경 경영 정도에 따라 금융권의 대출 이자도 달랐다. 그가 묵은 호텔에서는 ‘그린 카드’ 제도를 실시해 장기 투숙 고객은 시트 수건 등을 꼭 필요한 것만 세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연수에서 돌아와 김씨는 ‘에코-2000 개혁추진팀장’을 맡고 호텔에 환경 경영을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부서별로 환경 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연구하게 했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도대체 식당 주방에서 무엇을 친환경적으로 하라는 거냐”라며 반발하기도 했고 “음식물 남은 것 네가 다 먹어라”는 소리도 들었다. 워낙 ‘폐기물 절감’을 외치고 다니다 보니까 별명조차 ‘폐기물 김 과장’이 됐다.

그러나 김씨의 꾸준한 노력에 호텔은 서서히 변해갔다. 사무실에선 1회용 컵이 없어지고 구매부는 친환경 제품 위주로 제품을 찾아 샀다. 조리부는 ‘트리밍’(불필요한 부문을 잘라내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했으며 시설부는 폐열 회수기 등으로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객실에는 ‘그린 카드’ 제도가 도입됐다. 세탁할 때 시트 한 장을 줄이면 용수는 250L, 에너지 540W, 세제 10g을 아낄 수 있다. 매달 15톤씩 생기는 음식물 폐기물은 전량을 적정처리업체를 통해 사료로 재활용한다.

결국 이 호텔은 1995년 비제조업체에서는 국내 최초로 ISO-14000(환경 경영) 시범인증을 받았고 1997년 정식 인증을 받았다.

ISO-14000은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제정·공포한 ‘친환경적 경영체제에 관한 국제 표준 규격’으로 기업의 환경경영체제를 평가해 인증하는 제도. 단순히 환경법규나 국제기준을 준수했는지 뿐만 아니라 경영활동 전(全)단계에서 포괄적인 환경경영을 실시하는지를 평가한다.

김씨는 외국 서적들을 탐독하며 관련 지식도 꾸준히 쌓아나갔다. ISO-14000 심사원 자격을 따내 다른 기업들의 환경 경영들을 평가하기도 했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뒤 현대자동차, 삼성건설 등 대기업을 비롯해 100여개 기업체를 돌며 ‘환경 경영’을 전파해 왔다. 2001년에는 그 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해 ‘환경 경영 시스템’이라는 책을 썼고 경희대에 출강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도 환경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서울프라자호텔은 지하수 개발을 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호텔 별관 지하에서는 하루 400여t의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다. 호텔은 이 지하수를 시설 용수 및 화장실 배수용으로 쓰며 연간 2억원을 아끼고 있다.

요즘 김씨는 ISO-14000, ISO-18000(보건·안전경영), HACCP(식품 위생)을 아우르는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꼭 거창한 것뿐 아니라 내 주변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낫게 바꾸려는 노력이 곧 환경 경영”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주변을 더 좋게 만들려는 궁리를 해서일까. 40대 직장인 김씨는 유달리 행복해 보였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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