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中企해외탈출 막을 길은…

  • 입력 2004년 4월 26일 18시 42분


“요즘 해외로 나가려는 중소기업은 돈 벌려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탈출하는 겁니다.”

최근 중소기업 사장들을 면담한 모 은행의 기업담당자 A씨는 국내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26일 기업은행이 내놓은 ‘중소기업 해외진출 확대와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보고서에 따르면 이 은행과 거래하는 중소기업 중 52.1%가 ‘1, 2년 안에 해외로 진출하겠다’고 응답했다. ‘3∼5년 안에 진출할 것’이라는 응답도 29.1%였다.

5년 안에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기업이 5개 중 4개라는 얘기다. 진출 희망지역은 대부분 중국이다.

중소기업이 국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에 85.6%, 현재는 이보다 늘어난 90%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계산을 하면 5년 안에 국내 일자리의 72%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의 44.6%는 앞으로 국내 생산비중을 축소하거나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 국내 산업의 공동화로 직결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다면 청년실업은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중장년도 조만간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경제계 일각에선 중소기업들의 ‘해외 탈출’에 따른 공동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중국 등으로 보내거나 구조조정을 하고 한국은 경쟁력 있는 첨단 산업에 매달려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은행 중소기업 담당자의 얘기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지금 중국으로 나가려는 중소기업들은 그나마 국내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해외에 진출해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살 길을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중소기업의 이 같은 현실을 방관하면서 일자리 창출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17대 국회는 “성장이냐, 분배냐”를 논하기에 앞서 해외로 탈출하려는 중소기업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한 대책을 최우선적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박중현 경제부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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