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 MBC 기업드라마에 민감한 반응

  • 입력 2004년 2월 15일 14시 49분


삼성그룹 고 이병철(李秉喆) 회장과 현대그룹 고 정주영(鄭周永)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소재로 오는 6월부터 방송될 예정인 MBC 드라마 '영웅시대'를 둘러싸고 삼성과 현대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등 민감한 시기에 대기업 총수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가 전파를 타고 안방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경우 반(反)기업 정서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 특히 삼성과 현대는 대기업의 정경유착에 대한 여론이 더욱 악화되고 기업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그룹들은 최근 방송계획을 취소해달라는 뜻을 MBC에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드라마 '영웅시대'는 1960, 70년대 경제 개발의 중심축이었던 대기업 총수를 둘러싼 일화와 대기업을 일궈온 과정 등을 극화하는 100부작 대하 드라마로 군사정권과의 유착이나 노동자의 희생, 대기업 총수들의 자식관계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과 현대 등 관련 그룹들은 광고주협회를 통해 MBC측에 '영웅시대'의 방송을 하지 말아달라는 뜻을 간곡하게 전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날 "각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마당에 반기업 정서를 부추킬 염려가 있는 드라마를 방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최근 광고주협회를 통해 문제 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관련 그룹들이 공감했으며 방송계획을 취소해달라는 재계의 뜻이 MBC에 간접적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가뜩이나 현대엘리베이터 문제로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드라마에서 정경유착을 통한 현대의 옛 성장과정 등을 방영한다면 기업 이미지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많다"고 전하고 "현대자동차 그룹이나 현대중공업 그룹에서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MBC 박종 드라마국장은 "'영웅시대'의 방송을 취소해달라는 공식적 요청을 받은 바가 전혀 없다"며 "6월부터 방송을 시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드라마는 제2공화국과 같은 실록이 아니라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기업 드라마"라고 덧붙였다. 이병철 회장의 역은 전광렬이, 정주영 회장의 역은 차인표가 각각 맡는다.

이원재기자 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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