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침체 심화… “이런 불황 처음… 눈앞이 깜깜해요”

  • 입력 2004년 2월 2일 20시 21분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

내수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백화점과 자동차업계 등을 중심으로 이처럼 ‘불황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자동차 판매는 경기를 타는 대표적인 상품.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업체 5사가 2일 발표한 1월 판매실적에 따르면 계속되는 경기불황 속에서 내수판매가 7만5794대로 지난해 1월보다 39.4% 추락했다.

▽급락한 자동차 내수시장=이 같은 급락은 설 연휴가 1월에 끼어 있어 영업일수가 평소에 비해 일주일 정도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폭이 너무나 크다.

지난 한달 동안 현대차가 국내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3만7469대로 1999년 2월(3만7200대) 이후 최악의 실적. 장기파업으로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지난해 7월 실적(4만208대)보다도 낮다. 기아자동차 GM대우차 등 다른 업체들도 지난해 1월에 비해 내수판매 대수가 대폭 줄어드는 등 내수침체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출호조로 내수침체를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박병용 GM대우 광명철산영업소장은 “11년째 자동차 영업을 해오고 있지만 지금처럼 눈앞이 깜깜한 때는 없었다”며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곤두박질친 백화점 매출=지난해 12월 ‘반짝 특수’를 누렸던 백화점 매출이 다시 곤두박질을 쳤다. 2년 만에 부활한 송년 세일 영향으로 지난해 12월에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3∼4% 정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올랐지만 새해 들어 다시 6∼9% 정도 하락한 것.

롯데백화점의 1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1% 정도 줄었다. 경기 불황에 가장 늦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진 레저스포츠 관련 상품 매출이 11.9%, 수입 패션 잡화는 3.6%, 수입 의류는 9.7% 정도 줄어 심각한 내수침체를 반영했다.

백화점의 1월 매출이 하락한 데는 지난해 12월 실시한 송년 세일로 매출이 분산됐고 광우병 파동까지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 또 지난해 1월에 비해 영업일수가 하루 적었던 것도 매출 하락의 원인이 됐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파격적인 할인 행사라도 해야 고객들이 몰린다는 게 백화점업계의 하소연. 롯데백화점과 애경백화점은 최근 남성 정장을 3만원에 파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애경백화점은 한 걸음 더 나가 남성 정장 1만2500원, 여성 정장 1만5000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전자 및 유흥업계도 침체=전자업계도 번호이동성이라는 호재를 만난 휴대전화 등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요가 부진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 대리점들의 1월 매출은 전달에 비해 3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매출이 10% 정도 줄었다. 업계는 신용카드 한도 축소의 여파,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 등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내수부진에 접대비 실명제라는 악재까지 겹친 위스키업계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휴일까지 반납하고 직원들이 판촉에 매달리고 있지만 가파른 매출 하락세를 막기에는 역부족.

‘윈저17’을 판매하는 디아지오코리아는 1월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 정도 줄었다. ‘임페리얼’ ‘발렌타인’ 등의 브랜드를 가진 진로발렌타인스도 1월 판매량이 지난해 1월에 비해 25% 감소했다.

▽내수회복의 시점은=이승훈 JP모건 상무는 2일 한국CEO포럼 주최 세미나에서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 구조가 깨지면서 소비회복 시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JP모건에 따르면 올해 한국 소비자가 실제로 소비에 쓸 수 있는 소득은 2000년의 80% 미만으로 추정된다는 것. 특히 과다한 가계 부채에 따른 후유증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이 상무의 전망.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도 지금으로서는 내수 회복시점을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허 소장은 “80년대 이후 국내 경제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수출만 증가해서는 투자와 고용에 큰 영향이 없었다”며 “소비활성화를 위해서는 투자와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김태한기자 f reewil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