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發 人事쇼크” 官街 술렁

  • 입력 2004년 1월 20일 16시 47분


20일 중앙 부처 10개 국장급 직위에 대한 공개모집 결과가 발표되자 공직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인사로 살고 인사로 죽는다’는 공무원 사회에 혁명적인 인사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직위공모제 도입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중앙인사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절반만 타 부처 사람으로 채울 수 있어도 대성공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의 짙은 보수성과 높은 부처이기주의를 감안한 전망이었으나 청와대의 ‘강공’에 밀려 전부 타 부처 출신이 장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배경=이번 국장급 직위 공모와 인사교류는 참여정부의 인사개혁 로드맵에 따라 2006년 도입 예정인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사전단계로 실시된 것이어서 어느 정도의 외부인사 수혈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10개 공모직 선정 절차가 9개 해당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전원 타 부처 출신이 임용된 것은 청와대의 강력한 공직인사 혁신 의지가 음으로 양으로 각 부처 수뇌부에 전달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특히 한 부처의 경우 고위관계자가 직접 나서 “해당 공모직 분야에서 일한 사람은 모두 지원하라”고 직원들을 독려했으나, 심사 결과 관련 업무에 경험이 전무한 타 부처 사람이 선정된 사실도 그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부처 반응=경제부처와 타 부처 사이에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5명이 응모해 4명이 선정된 기획예산처는 한마디로 잔치 분위기. 이를 두고 다른 부처에서도 이왕 외부 인사를 선정해야 했다면 예산을 많이 따올 수 있는 예산처 출신을 선호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예산처는 다른 부처의 불만을 의식해 “이번에 빠져나간 국장 자리를 다른 부처의 3∼5급 공무원들 가운데서 뽑겠다”고 재빨리 발표했다. 이종갑 조달청 원자재수급계획관까지 3명이 선정된 재정경제부도 인사에 숨통이 트였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 공모직 두 자리를 모두 타 부처에 빼앗긴 농림부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재경부와 예산처 출신이 두 자리를 모두 차지한 것에 대해 이들 부처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부처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공무원도 많았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충격과 실망에 휩싸였다. 대학지원국장은 대학입시, 지방대 문제, 사립대 분규 등 200여개 4년제 대학의 복잡한 대학 정책을 총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인 데다 올해는 제7차 교육과정이 처음 반영되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등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어 난감한 표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 자리는 업무 파악에만 6개월 이상이 걸리며 전국 각 대학의 이해관계 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경험이 없는 인사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통일부도 공모직의 전문성에 비추어 비전문가의 선정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재경부-예산처 '파워' ▼

정통 경제관료를 대표하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역시 강했다. 중앙부처 국장급 10개 직위 공모(公募)에서 두 부처 출신 국장이 7명(70%·재경부 출신 조달청 국장 포함)이나 선정돼 막강한 파워와 경쟁력을 과시했다.

특히 이 가운데도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이 6명이나 돼 ‘기획원 전성시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획원 인맥’은 이미 청와대와 내각의 핵심 정책라인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번 국장급 공모에서 재경부에서는 정병태(鄭炳台) 국민생활국장, 장태평(張太平)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이 선정됐다. 또 재경부 출신으로 산하기관인 조달청에서 일해 온 이종갑(李鍾甲) 조달청 원자재수급 계획관이 뽑혔다. 이들 3명은 모두 옛 기획원 출신으로 재정경제원을 거쳐 재경부에서 근무해 왔다.

이들 국장이 옮아가는 교육, 의료, 농업분야는 시장개방 및 규제완화를 두고 자주 재경부와 마찰을 일으킨 분야다. ‘외부 인사’인 이들이 앞으로 새 부처에서 내부 반발을 어떻게 달래면서 경제원리에 입각한 ‘개혁’에 나설지 주목된다.

예산처에서는 남광수(南光洙) 재정계획국장, 남동균(南東均) 사회예산심의관, 서병훈(徐丙焄·국방대학원 파견) 국장, 이창구(李昌求·한국개발연구원 파견) 국장 등 4명이 다른 부처의 요직 국장으로 선정됐다. 이 가운데 재무부 출신인 이 국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이 모두 기획원에서 사무관 과장 등을 지냈다. 현 정부의 ‘기획원 인맥’은 화려하다. 청와대에는 박봉흠(朴奉欽) 정책실장을 비롯해 권오규(權五奎) 정책수석비서관, 김영주(金榮柱) 정책기획비서관, 김성진(金成珍) 산업정책비서관 등이 자리를 잡았다. 내각 경제팀에는 김병일(金炳日) 예산처장관, 장승우(張丞玗) 해양수산부장관. 김광림(金光琳) 재경부차관 등이 있다.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과 이영탁(李永鐸) 국무조정실장도 기획원 출신이다. 기획원 출신 경제관료가 다른 부처와의 경쟁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국가 경제를 넓게 보는 훈련을 쌓은 데다 각 이해집단에 덜 얽매여 비교적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예산처의 한 간부는 “자유분방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데 적극적인 기획원 분위기가 외부 인사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이번 국장급 공모의 취지와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론보다는 총론,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치기 쉬운 기획원의 한계도 거론된다. 또 ‘기획원 독식(獨食) 현상’과 ‘동질적 순혈(純血)주의’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꼭 바람직한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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