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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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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鄭夢憲·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로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사망 이후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현대그룹이 다시 한번 격동의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현대그룹의 자산규모는 10조2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15위. 한때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최대그룹이었지만 2000년 ‘왕자의 난’과 현대자동차(2001년 8월) 현대중공업(2002년 2월)의 계열 분리로 소규모 그룹으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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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지배구조에 미칠 영향=정 회장의 사망은 현대그룹 경영권과 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현대상선을 지주회사로 해 현대그룹을 지배해왔다(그림 참조).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후계자’라는 후광을 이용해 작은 지분만으로도 그룹을 통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 역할을 대신할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
정 회장의 장모인 김문희씨가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18.57% 갖고 있지만 한 번도 경영에 나선 적이 없다.
교보증권 박석현 애널리스트는 “김씨가 정 회장의 역할을 대신 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엔 현대그룹의 계열사들이 각자의 길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강화되면서 현대상선(노정익 사장) 현대엘리베이터(강명구 회장) 현대증권(조규욱 부회장) 등의 계열사가 한동안 독립경영을 할 것 같다는 것. 얽혀 있는 계열사의 지분을 매각하면 계열분리도 가속화될 수 있다.
현대상선의 역할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이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대북사업 철수 △현대계열사 지원금지 △지주회사 역할포기 등을 약속해놓은 상태. 현대상선 관계자는 “독자경영체제를 유지해오겠다고 공표했는데도 정 회장의 존재 때문에 현대그룹의 지주회사로 비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룹의 주력이었던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경영권이 이미 은행의 손에 넘어갔고, 현대증권 현대종합상사 등 나머지 기업의 구조조정도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머지 계열사의 운명에는 정 회장 사망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현대차나 현대중공업이 MH계열 회사지분을 인수하는 식으로 현대그룹이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대북사업은 누가 맡나=가장 변수가 많은 것은 현대아산과 대북사업. 현대그룹은 4일 앞으로도 남북경협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대북사업은 현대아산 주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필요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큰 어려움에 빠져있다. 현대아산은 작년 말 현재 누적결손금이 2803억원이나 된다. 관광공사의 도움(900억원)으로 겨우 유동성 위기를 넘긴 상태. 이전에는 현대상선이 자금줄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완전히 손을 뗐다.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을 계속 추진하려면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중심으로 일을 진행하되 현대 가문에서 누군가 이 일을 떠맡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현대차 정몽구(鄭夢九) 회장과 현대중공업 정몽준(鄭夢準) 전 고문이 대안.
그러나 현대차 그룹이 대북사업을 맡게 된다면 외국인투자자(지분 46.3%)의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준 전 고문은 기업인으로보다 정치인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 대북사업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과 정몽준 전 고문 모두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대북사업을 떠맡지 않으려고 했다”며 “대북경협 사업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등을 활용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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