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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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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의 일. 이미용 기기를 생산하는 유닉스전자 이충구(李忠求) 회장은 사업 자금을 빌리기 위해 경기 부천시내 한 은행을 찾았다. 창구 직원이 시키는 대로 대출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 지점장이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 그러나 약속 시간을 몇 시간 넘겨 나타난 지점장은 선이자를 떼는 것은 물론 본점 실무자와 임원들에게 줘야 한다며 금품까지 요구했다.
창업 초기라 자금이 달리는 상황이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곧바로 서울 본점으로 달려가 담당 임원에게 “기업이 커야 은행도 사는 거 아니냐”고 따졌고 그 후 다시는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유닉스전자는 78년 설립된 후 헤어드라이어라는 한 우물만 팠다. 이 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라서 어떤 상황에도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25년 가까이 한 가지 분야만을 고집한 덕분에 쌓인 노하우는 경영 현장의 각 분야에서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유닉스전자의 직원들과 제조 설비는 품질이 좋으면서도 생산 원가가 낮은 부품을 만들어냈고 이는 완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유닉스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온 헤어드라이어도 오랫동안 시장을 지켜본 안목이 없으면 나오지 않았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의 이미용 관련 전시회를 꾸준히 돌아다니던 이 회장은 94년 초반 도쿄에서 ‘이온이 모발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보고를 듣고 이를 상품화로 연결시켰다. 정전기를 줄이고 머릿결을 부드럽게 하는 이온 헤어드라이어는 예상대로 빅 히트를 쳤다. 일본 헤어드라이어 시장은 모두 이온 헤어드라이어로 바뀌었을 정도.
소형 가전 분야에서 유닉스전자의 헤어드라이어는 안방 시장을 지키고 있는(시장점유율 70%) 거의 유일한 국산품이다. 커피메이커, 다리미, 면도기, 토스터 같은 다른 소형 가전제품 시장은 필립스나 브라운 등 해외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유닉스전자는 올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 수출을 하며 인연을 맺은 한 세계적인 이미용기구 유통업체가 지분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 제조 유통의 새로운 파트너십이 유닉스전자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5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은 유닉스전자는 지난달 ‘소형 가전의 명가’인 필립스의 고향 네덜란드에 헤어드라이어를 처음 수출했다. 큰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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