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스탠리 시에박사 "금리-세금 안내리면 한국경제 연착륙"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12분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Andy Xie·사진) 박사는 내년 한국경제에 대해 “급속한 소비지출 둔화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연착륙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 등을 역임한 시에 박사는 본보와의 e메일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 연구기관들과는 뚜렷이 다르게 한국경제를 내다봤다. 한국은행 등 국내 주요기관은 내년 초 소비지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감소폭은 그리 심각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에 박사는 최근까지 성장의 상당 부분을 소비지출이 떠받쳐왔다는 점을 근거로 가계대출이 줄어들면 소비심리 위축과 지출 축소는 두드러질 것이라 밝혔다. 때문에 금리인하와 조세감면을 통해 소비를 어느 정도 지속시키지 않는다면 한국경제가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MIT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과 중국경제에 관한 세계 정상급 애널리스트다.

-한국에서 신용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백화점과 할부판매점의 11월 매출이 떨어졌다. 10월에만 6조1000억원 증가를 보였던 가계대출은 11월에는 3분의 1 수준인 2조1000억원 증가로 둔화되었다.신용공급 사이클의 고점이 어디인지 집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11월을 전환점으로 증가세가 잡혔다고 생각한다”

-소비지출이 둔화함으로써 앞으로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9월까지 경상가격 기준으로 소비지출은 10.2% 늘었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6%였다. 소비를 제외한 명목GDP 증가율은 매우 낮다는 의미다. 신용공급 사이클이 하강곡선을 그릴 때 소비는 급격히 축소한다. 한국경제는 내년 초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의 고비에 설 것이다. 나는 연착륙할 것으로 믿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경기확장적 정책과 수출이 견고하게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한국 내의 일반적 전망과 달리 소비지출 감소를 강조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가계신용 팽창은 굉장히 급격했다. 신용카드 회사의 총자산은 GDP 대비 19%에 해당한다. 국제 평균이 5% 이하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것이다. 한국인들이 절세 등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늘린 것인지 아니면 감당하지도 못할 생활패턴을 유지하려고 신용카드 빚을 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 가지 설명 가운데 중간 지점이 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때문에 신용증가 사이클의 하강으로 인한 소비지출의 감소는 심각할 수 있다.”

-그래서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것인가.

“경착륙은 연체율 확대→대출심사 강화→연체율 확대라는 악순환에 의해 빚어진다. 경기진작책만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이자율이 낮아진다면 금융기관이 대출기준을 강화하더라도 악순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수입이 줄어드는 경기하강기에 실질이자율이 그대로 유지되면 채무자들은 도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는 것은 통화신용정책의 기본이다. 이자율을 낮추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경착륙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은 재정이 건전한 편이다. 세금인하 등 재정확장 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인의 국내투자를 늘리고 동북아 상업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도 경쟁력을 갖춘 조세제도는 필수적이다. 경기 하강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내년 성장률이 6%선에 달할 수 있다고 보는가.

“걱정스러운 것은 많은 한국사람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이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서 낮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때문에 6%선 성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양(量)적 수치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이 경쟁을 촉진하고 외국인 투자를 늘려 서비스 부문의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면 원화 가치는 강해질 것이다.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한국민이 얻을 수 있는 1인당 국민소득 증가는 앞으로 증가분의 절반 정도에 이를 수 있다. 성숙한 경제가 된다는 것은 정책 우선순위가 양에서 질(質)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6% 성장은 버블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적정 성장률은 얼마라고 보는가.

“잠재적 경제성장률은 노동인구 증가율에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합한 것과 일치한다. 노동인구 증가는 1%,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아마도 2∼3% 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제가 미발달한 상태라면 노동생산성 증가는 아주 높게 나타난다. 한국은 이미 성숙한 경제인데다 국내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노동생산성 성장률이 호주나 영국처럼 성숙한 경제와 유사하게 나타날 것이다. 때문에 6%보다는 낮아야 한다고 본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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