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떨어졌을때 충분한 자금으로' 자사주매입 룰 지켜야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7시 55분



‘남는 돈으로, 낮은 주가에 자사주를 사는 회사를 선택하라.’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배당과 함께 주주 중심 경영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올해 많은 회사들이 자사주를 사들였다.

회사가 자사주를 사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물량이 줄어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자사주에는 배당을 줄 필요가 없어 자사주 매입으로 주식수를 줄여놓으면 주주가 받을 수 있는 주당 배당금이 커지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자사주를 ‘단기 재료’로 보고 투자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 회사의 의도와는 달리 자사주를 산 이후에도 주가가 계속 떨어지는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의 의미〓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단기간 떠받쳐 놓더라도 기업 펀더멘털이 형편 없으면 주가는 곧 하락하기 마련. 실제 올해 자사주 매입을 마친 상장기업 가운데 3분의 2가 자사주를 샀을 때보다 주가가 더 떨어졌다.

자사주 매입의 진짜 의미는 한 회사가 자사 주가에 대해 ‘지금이 최저점이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데 있다. 회사가 남는 돈으로 자사주를 사기로 했다면 당연히 주가가 쌀 때를 선택해야 비용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주가가 더 떨어질 것 같은데도 자사주를 산다면 어리석은 판단이다.

▽안 좋은 자사주 매입〓따라서 주가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자사주를 매입하는 회사는 주가를 단기간 떠받쳐야 할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이 자사주를 사는 회사의 실적과 미래 전망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적이 좋지 않은데도 자사주를 성급히 사는 회사라면 투자를 피해야 한다.

돈 쓸 곳이 있는데도 자사주를 매입하는 회사도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자사주 매입은 남는 돈으로 하는 게 정석이다.

투자할 곳이 널려 있는데도 주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갉아먹을 뿐이다.

▽좋은 자사주 매입〓돈이 충분한 회사 가운데 주가를 굳이 떠받칠 필요가 없는 회사가 자사주를 산다면 이는 좋은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다.

지난해 주가 5200원선(액면분할 이후를 기준으로 할 때)에서 자사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퍼시스나 주가 3만원 이하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신도리코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두 회사 모두 대주주 지분이 높고 이익을 많이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배구조가 확실해 “주가를 억지로라도 빨리 올려달라”고 압력을 넣을 주주도 없다.

따라서 두 회사 모두 “지금이 가장 싸게 자사주를 살 수 있을 때”라는 판단에 따라 주식을 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두 회사 주가는 그 때를 저점으로 크게 올랐다.

대학투자저널 최준철 발행인은 “주가와 실적에 대해 가장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회사가 자사주를 사는 게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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