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세계박람회 유치무산]부처간 손발 안맞아 '예고된 실패'

  • 입력 2002년 12월 4일 17시 46분


한국이 2010년 세계박람회 개최권을 따내지 못한 것과 관련해 많은 전문가들은 ‘예고된 실패’라고 말한다.

유치전 초기부터 정부 부처간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나온 데다 세계박람회기구(BIE)의 독특한 결선투표 방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주먹구구식 득표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기업이 총력을 기울인 국제행사 중 실패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 부처는 ‘따로국밥’〓정부는 세계박람회 유치 방침을 1999년 6월 확정한 뒤 주무 부처로 해양수산부를 선정했다. 개최후보지인 여수의 박람회 주제를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바다와 땅의 만남’으로 정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정부는 당초 산업기술 전반과 문화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는 세계박람회 특성상 주무 부처로 산업자원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관계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산자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해양부가 ‘얼떨결’에 주무 부처가 됐다. 해양부도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한 ‘태생적 한계’를 새로운 업무를 맡는 것으로 상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해양부가 주무 부처로 결정된 뒤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해운이나 수산회사 외에는 기업을 다뤄본 경험이 없었던 해양부로서는 기업들을 세계박람회 유치전에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양부 장관이 득표활동을 위해 출국하면 상대방 정부에서 “박람회 주무장관이 왜 해양부 장관이냐”는 질문을 수시로 들어야 했을 정도. 전문성을 요구하는 세계박람회 유치에 비전문가를 투입하는 오류를 범했던 셈이다.

▽개인 로비가 통하지 않는 투표방식〓BIE의 독특한 투표방식도 이번 실패의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 중론.

올림픽 및 월드컵 개최권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개인별 투표로 결정되는 것과 달리 세계박람회는 국가별로 훈령을 받아 투표를 한다. 개인에 대한 로비가 먹힐 개연성이 크지 않다.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나 정몽준(鄭夢準) 국민통합21 대표가 ‘인적 로비’를 통해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대신 각국이 유치 희망국들에 “공장을 세워달라”, “원조를 해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여수의 국제적 지명도가 중국 상하이(上海)보다 크게 떨어졌던 점도 패인의 하나로 꼽힌다.

모나코〓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현대車 "혼신 다했는데…" 허탈▼

현대자동차는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하자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3일 밤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옥 지하식당에서 TV를 지켜보던 현대차 임직원들은 그동안의 유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몽구(鄭夢九) 현대차그룹회장이 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으로서 각국을 돌며 유치활동을 벌여온 데다 현대모비스 박정인(朴正仁) 회장, 현대캐피탈 이계안(李啓安) 회장, INI스틸 유인균(柳仁均) 회장 등 최고경영진도 힘을 보태는 등 그룹 차원에서 박람회 유치에 혼신을 기울여왔기 때문.

특히 정 회장은 2년간 지구 4바퀴에 해당하는 16만㎞ 이상의 출장을 통해 세계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의 국가원수와 장관들을 만나 박람회 유치활동을 진두지휘했다. 정 회장은 10월22일 출국, 한달 넘게 해외에 머물며 유치 경쟁국인 중국을 의식해 방문국도 밝히지 않은 채 막바지 유치활동에 주력해 왔다.

또 지금까지 10여개국을 대상으로 유치활동을 벌인 현대모비스 박 회장 등도 지난달 말부터 BIE 회원국이 가장 많은 유럽으로 총 출동해 최종 득표활동을 벌여왔다.

현대차는 10월 말부터 박람회 유치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는 한편 BIE 본부가 있는 파리에 인력을 파견하는 등 조직적으로 유치활동을 펴왔다.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까지의 일지
1996년 6월전남도 2010년 세계박람회 개최 건의
1997년 5월해양수산부 2010년 세계박람회 개최 추진 공식 발표
1997년 12월2010 세계박람회 유치 기본계획 용역 실시
1999년 6월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 추진계획 국무회의 보고 및 확정
1999년 12월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발족 및 제126차 세계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 의사 공식 표명
2000년 1월세계박람회 유치 정부위원회 구성
2001년 5월BIE에 유치신청서 제출
2002년 2월BIE 실사준비보고서 제출
2002년 3월BIE 대표단 여수 현지 실사
2002년 7월제131차 BIE 총회에서 개최 신청을 정식 승인
2002년 12월제132차 BIE 총회에서 박람회 유치 실패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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