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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2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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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한 김정은씨(31·여)는 요즘 칼바람을 맞아가며 매일 아침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과 과천 재정경제부 앞을 오가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씨의 ‘취업 전쟁’은 1992년 명문 A여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시작됐다. 1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는 물론이고 취업을 위해 어학공부 등도 열심히 했다. ‘남보다 빠지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1년간 호주로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취업원서를 내는 족족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여자는 취직하기 어렵다’는 통념이 그녀를 억눌렀다.
생각다 못한 김씨는 97년 9월 명문 K대 대학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여자라는 핸디캡을 감안하더라도 전문가가 되면 나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김씨가 입학한 지 5개월도 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취업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치는 와중에서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쟁쟁한 남자 동료들조차 취직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중소기업조차 취직이 안돼 속 태우며 30대 중반의 나이에 과외 현장에 뛰어드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는 결국 가장 안전하다는 국가고시를 선택했다. 김씨는 1998년 여름 1년 남짓 다니던 대학원을 포기하고 ‘확실한 취업’을 보장해준다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했다. 올 9월 합격의 영예를 누렸지만 그의 ‘취업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여 곳의 회계법인에 원서를 넣어봤지만 올해부터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가 1000명으로 늘어나면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견디다 못해 30여 곳의 일반 회사에도 지원을 해봤지만 ‘서른을 넘긴 여자’라는 이유로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김씨는 “이젠 눈물도 말라버렸다”고 했다.
고학력 여성의 취업난이 비단 김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0년 2월 명문 K대를 졸업한 이모씨(26·여)도 어학연수는 물론 컴퓨터 관련 자격증, 재학시절 인턴 경험 등 취업 준비에 공을 들였지만 3년째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이씨는 “지금까지 100여 통이 넘는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통과한 곳이 없다”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직장을 구할 수 있는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金太洪) 노동통계연구부장은 “IMF 경제난을 피해 대학원 등에 진학했던 고학력자들이 최근 대거 취업시장에 몰려 고학력 취업 병목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특히 나이 든 여성 고학력자들은 기업에서 아예 선발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