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주문 '바터 담합' 의혹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7시 55분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인 투신운용사의 주식 주문이 특정 증권사로 몰리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투신 한국투신 현대투신 미래에셋투신 등 4개 투신운용사가 계열 증권사에 대규모로 매수매도 주문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계열 증권사에 낼 수 있는 주문 물량을 총 주문 금액의 20%로 제한한 금융당국의 조치를 피해 일부 투신사와 증권사가 서로 ‘주문을 교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1일 한나라당 김부겸(金富謙) 의원에게 제출한 ‘투신운용사의 1∼9월 증권사별 주문 현황’에 따르면 이들 4개 투신운용사가 계열 증권사와 2, 3개 증권사에 낸 주문은 전체의 28.8∼60.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G증권사 법인영업팀 관계자는 “돌려내기식 주문은 투신업계의 고질적 관행으로 이번에 드러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바터(물물교환)식 주문’ 의혹〓9월 말 현재 4개 투신운용사의 시장점유율은 32%. 그런데 이들의 주식 주문은 계열 증권사들로 몰려 있다.

대한투신운용은 계열사인 대투증권(18.1%)을 포함해 한투증권(11.5%) 미래에셋증권(9.7%)에 전체의 약 40%를 주문했다. 미래에셋도 대투증권(13.0%) 한투증권(13.1%)에 주로 주문을 냈으며 한국투신운용은 미래에셋증권(7.0%)과 대한투신(4.6%)의 주문이 상대적으로 높다. 현대투신운용은 계열 증권사와 주요 투신사에 대한 주문이 60.9%나 된다. 이는 이들 투신운용사가 증권업계 1, 2위인 삼성과 LG증권에는 1% 남짓한 주문을 낸 것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것.

여기다 외국계 증권사가 투신업계 1∼3위 주문을 싹쓸이해 국내 증권사의 입지는 더 좁다. 삼성투신운용의 주문 1위는 워버그증권(24.6%)이며 대투는 살로먼스미스바니(23.4%), 한국투신운용은 골드만삭스(16.9%)가 1위.

▽리서치 위축과 투자 판단에 소홀〓전문가들은 주식시장 영향력이 큰 주요 투신운용사의 ‘물물교환식 주문 관행’이 법인시장을 왜곡한다고 지적한다.

기관투자가들은 좋은 리서치 자료를 제공한 증권사에 대가로 주문을 낸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

L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주요 투신사의 시장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내 증권사의 큰 고객이 아니다”며 “아예 일부 증권사는 이들 투신사엔 설명회를 갖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가 더 좋은 고객이라는 것.

투신운용사에 자금을 맡긴 개인 고객에겐 배임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S투신운용의 펀드매니저는 “특정 증권사에 미리 주문을 내기로 결정이 돼 있는 경우 펀드매니저가 다양한 정보를 접한 뒤 투자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자금을 맡긴 고객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말했다.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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