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2]동아일보 경제부 박형준기자 택배 체험기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36분


'추석선물 배달입니다.'
'추석선물 배달입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14일 토요일 새벽. 서울 금천구 독산동 신세계백화점 강서배송센터는 분주한 분위기가 벌써 풍겼다. 기자는 몸으로 취재하기 위해 배송 아르바이트생을 자청했다.

▽오전 7시40분 금천구 독산동〓정신이 없다. 50평 남짓한 물류센터 앞 공터는 배달차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물건을 실으러 줄기차게 들어오는 트럭, 배달차까지 선물 카트를 끌고 가는 사람, 처음 와 어쩔 줄 모르고 쭈뼛거리며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 전체를 지휘하는 직원들….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생 등록을 마친 뒤 배달차를 지정받았다. 베테랑 운전사와 함께 5분 만에 배달할 물건을 옮겨싣고 서둘러 물류센터를 빠져나왔다. 운전사는 그때서야 담배를 물며 인사를 했다.

“오늘 처음 와? 그럼 정신이 없겠구먼. 이제 한숨 돌리면서 물건이 제대로 실렸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

하루 배달할 물품 수는 50개. 주로 용산구와 마포구에 몰려 있다. 배송 리스트에 적힌 물품을 확인하는 동안 운전사는 지도를 보며 최단 거리를 계산했다. 오전 8시30분. 모든 준비를 끝내고 첫 배달지로 출발.

▽오후 12시20분 용산구 청파동〓점심시간. 운전사가 평소 잘 아는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회덮밥 하나에 알탕 하나.

“요즘은 배달하면 음료수도 주고 하데. 나 혼자 배달할 때는 그런 거 없었거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땀 흘리면서 배달하니까 수고한다고 음료수를 주더라고.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나이도 많아 더 힘든데. 하하….”

식사를 하면서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배달하면서는 서로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 배달할 곳에 전화를 해야 할 뿐 아니라 수시로 지도를 봐가며 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후 3시20분 마포구 공덕동〓아직 22개 물품이 남았다. 절반도 돌리지 못한 셈.

“갈비세트 대신 상품권으로 받을 수도 있죠. 상품권으로 바꿔주세요.”

주소 확인을 위해 전화를 하자 대뜸 상품권으로 바꿔달라고 한다. 선물 보내는 사람의 성의가 부끄러워지는 듯했다.

“상품권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그 집은 안 가도 돼. 전표에 잘 메모해 놔. 요즘은 하루 1, 2명은 꼭 상품권으로 바꿔달라고 그러더라.”

최근에는 택배 물품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도 일주일에 2, 3명 정도 있다고 한다. 높은 위치에 있어 주위 이목이 두려운 사람이거나 거래처에서 주는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 청렴한 사람일 것이라고 둘은 추측했다.

▽오후 7시20분 금천구 독산동〓마지막 50번째 물품을 전달하고 배송센터로 돌아오니 7시가 넘었다. 긴 하루였다.

배송 리스트와 전표를 회사에 넘겼다. 수고했다며 내일도 꼭 나오라고 한다. 최근 아르바이트생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땀이 묻어 있는 일당 3만5000원을 손에 쥐고 싶었다. 그러나 통장으로 입금시켜 준다고 한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