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 ‘강제조사권’ 논란]

  • 입력 2001년 10월 5일 22시 56분


금융감독위가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강제조사권’을 갖는 것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시장의 혼탁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금융 당국의 권한이 남용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금융 당국이 국세청과 같은 준사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식 불공정 조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이로 인해 이용호 진승현 정현준 ‘게이트’와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용호 사건에서 보듯 금융 당국이 거래소로부터 넘겨받은 혐의 사실에 대해 수개월씩 조사를 벌이지 않는 등 기존에 갖고 있던 권한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사건을 기화로 ‘권한’만을 확장시키려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나〓금융감독원의 조사 과정을 보면 우선 증권거래소나 증권업협회로부터 주가 조작, 시세 조정 혐의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에 착수한다. 관련자 소환과 계좌 추적 등의 과정을 거쳐 혐의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지, 단순히 통보만 할 것인지를 따져 검찰로 사건을 넘긴다. 그러나 그동안은 금융 당국에 강제 조사권이 없었기 때문에 관련 회사 장부에 대한 압수, 영치, 관련자에 대한 강제적인 소환 조사 등은 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금융 당국이 △강제소환권 △자료제출요구권 △현장 조사권을 비롯해 자료를 압수할 수 있는 자료 영치권 등을 갖게 되고 이에 불응할 경우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물론 이같은 ‘강제력’으로 조사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거래소나 증권업협회로부터 통보받은 수많은 사건들조차 시간적, 인력적인 문제로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던 금융 당국이 단순히 권한만을 확대했다고 해서 시장의 투명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

▽권한 남용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정부는 금감위가 국세청과 같은 준사법권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수십년간의 세무조사 노하우가 누적된데다 준사법권 역시 악의적인 탈세 등 조세포탈범죄 혐의가 있는 사안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60명 남짓한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에는 준사법권을 무리없이 행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부족한데다 제대로 된 교육,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권한이 남용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위가 강제조사권을 중대 범죄에만 적용한다고 밝혔지만 조사 초기단계에서 중대 범죄와 일반 범죄를 구분하기 어려워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용호 사건에서도 금감원의 연루 의혹이 불거지는 등 감독 기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위 금감원이 막강한 권한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추지 않는다면 시장 참가자의 거부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