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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8월 1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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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직원들은 요즘 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반도체 D램 가격의 폭락과 수출 감소 영향으로 ‘반도체 적자설’이 퍼지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몸을 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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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가전 공장 직원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식을 자제하고 있다. 이 여파로 작년 이맘때는 평일 저녁에 자리를 잡기조차 힘들었던 수원시내 음식점들의 매출이 부쩍 줄었다.
기흥공장의 A차장은 “수원지역 음식점에 가 보면 파리만 날리고 있다”며 “반도체가 3∼4년 주기로 경기를 타는 업종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불황의 골이 너무 깊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이 회사 청주공장 직원 B씨는 “반도체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고, 회사는 언제 정상화될지도 몰라 모든 직원들이 불안해 한다”며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동료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전무 이하 임원들의 사무실이 없어졌고 직원 생일 때 지급했던 도서상품권도 사라졌다.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수출 타격〓반도체 수출이 격감한 직접적 이유는 한국 반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메모리 D램의 가격 폭락 때문. 삼성전자 김일웅 상무(D램 마케팅 팀장)는 “D램의 평균 수출단가는 1·4분기(1∼3월) 5∼6달러에서 2·4분기에 3달러 중반으로 낮아졌고 7월 들어서는 3달러 이하까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64메가D램의 경우 수출단가가 이미 생산원가 아래로 떨어져 ‘팔수록 손해 보는’ 딱한 신세. 128메가D램은 작년에 개당 17.74달러에서 1.74달러로, 64메가D램은 8.80달러에서 0.92달러로 각각 하락했다.
64메가를 기준으로 보면 올해는 9개 이상을 수출해야 작년 7월에 1개를 팔아 번 돈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셈이다.
D램은 이처럼 제값을 받지 못하는 반면 휴대전화 컴퓨터 등에 쓰이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수입은 꾸준히 늘어 반도체 산업 전체로는 6월에 무역수지 적자(통관 기준)를 냈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국산화율이 20%에 불과할 정도로 취약한 탓에 반도체가 수출 효자 자리는 고사하고 오히려 무역수지 적자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굴뚝 업종도 공급 과잉으로 출혈경쟁〓조선 자동차 등의 수출이 꾸준히 호조를 보이지만 철강 화학섬유 석유화학 업종은 선진국 시장의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이 겹쳐 출혈 경쟁을 감수하는 실정이다.
특히 화섬업계는 효성 태광산업 고합 등의 파업으로 공장 가동조차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도 만성적인 공급 과잉으로 수출 단가가 떨어져 채산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PVC의 평균 수출 가격은 작년말 t당 563달러에서 440달러로 떨어져 수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LG석유화학 조규택 해외지원팀장은 “PVC 등 합성수지는 기초 소재로 경기에 대단히 민감한 제품인데 세계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유화제품의 절반을 소화하는 중국에 대한 수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도 주요 수출대상국인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자급률을 높이는 동시에 경기불황에 맞춰 수입 물량을 줄이고 있어 고전하고 있다. 핫코일 수출 가격은 작년 하반기에 t당 270달러에서 올해는 180달러까지 떨어졌고 냉연강판은 국내 업체간 ‘가격파괴’ 경쟁으로 최고 40% 하락했다.
포항제철 장법종 수출지원부장은 “작년과 비슷한 물량을 수출하는데도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익성은 아주 나빠졌다”고 말했다.
기업체의 수출 담당자들은 “세계 경기가 당분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중국 등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어 올해초 세웠던 목표를 대폭 낮춰야 할 처지”라며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원재·김광현·하임숙기자>parkwj@donga.com
▼美-日수출 20%이상 줄었다▼
7월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자 ‘수출 한국호’의 엔진이 고장난 게 아니냐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정도는 작년의 경우 경제성장기여율 61.4%, 외화가득률 56.3%, 취업기여율 10.8% 등이다. 수출이 줄어들면 국내의 투자 생산 내수 등이 줄줄이 위축돼 경제전체가 멍들게 된다.
7월 수출이 대폭 줄어든 가장 큰 요인은 주력품목인 반도체와 컴퓨터의 수출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은 작년보다 15억달러, 컴퓨터는 4억5000만달러 줄어 전체 수출 감소액(28억9000만달러)의 70%에 달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감산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경제 침체 영향으로 미국과 일본에 대한 수출은 20% 이상 줄었고 유럽연합(EU)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 중남미 중동 등에 대한 수출도 10% 이상 감소했다. 대(對)중국 수출이 6월에 처음으로 감소했고 일본 대만 등에 대한 수출도 10%대의 감소세를 보였다.
수출이 늘어난 품목은 자동차 휴대전화 선박 통신케이블 등이었다.
7월중 수입도 감소해 무역수지는 흑자를 냈다. 그러나 수입이 감소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원자재(-11.3%)와 자본재(-23.8%) 등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어 수출이 더욱 감소할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제조장비(-55.6%) 금속공작기계(-46.9%) 정밀기계(33.5%) 반도체(24.4%) 등 수출로 연결되는 자본재 수입이 줄어든 것은 기업의 위축된 투자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金京源) 해외경제실장은 “세계경제 침체와 국내 투자 감소 등을 감안할 때 수출은 내년 하반기에나 회복될 전망”이라며 “정부는 경쟁력 있는 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다른 부실기업을 빨리 정리하고 신바람 나게 ‘기업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낙균(崔洛均) 무역투자실장은 “한국은 미국 EU 일본 등 3대 시장과 10개 주요품목의 비중이 전체 수출의 절반을 넘어 세계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지역협정에 가입해 무역장벽을 뚫고 기업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철기자>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