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사람] 신나는 Rock... 일도 삶도 "꿀맛"

  • 입력 2001년 2월 22일 18시 39분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 신촌의 한 록카페.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20,30대 직장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평소 대학생들로 북적대던 이곳을 회사원들이 가득 채운 이유는? 직장인 동호회인 ‘다시다밴드’의 첫 정기발표회가 열렸기 때문. 직장동료와 가족들이 대부분인 100여명의 관객들이 카페안을 가득 채우자 한쪽에 마련된 무대위에 선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폭발적인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 어떡해’ ‘아파트’같은 ‘고전적’ 가요와 디퍼플의 ‘스모크 언더 워터’, B612의 ‘나만의 그대모습’ 등 락음악이 잇달아 연주돼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다시다밴드’는 다시다를 생산하는 제일제당의 사내 동아리. 지난해 5월 결성돼 연습을 거듭한 끝에 이날 드디어 갈고닦은 실력을 공개했던 것.

이 밴드에서 드러머를 맡고 있는 서울세일즈유니트 영업지원팀의 윤영근씨(31). 지난해 5월 사내 인터넷게시판에 “‘끼’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 다 모여라”는 글을 올려 다시다밴드의 불꽃을 지핀 주인공이다. “97년 입사해 몇 년간은 동호회 활동을 시작할 기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입사직후 IMF가 닥치면서 회사원들이 모두 바짝 위축된 것도 이유중 하나였죠. 지난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서 사람들을 모으기로 결심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0여명이 지원해 20여명이 밴드에 참가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에서 누군가 불쑥 내놓은 아이디어가 만장일치로 채택돼 밴드이름이 결정됐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음악장르와 실력은 천차만별. 그래서 3개의 서브브랜드를 두기로 했다. 올드락을 연주하는 ‘진국다시다 밴드’, 헤비메탈을 선호하는 ‘각설탕 밴드’, 내공이 부족한 연습생들의 모임인 ‘게토밴드’등 3개의 ‘서브 밴드’가 탄생했다.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려는 단계에서 악기 구입비와 연습장소가 문제가 됐다. 회사측에 도움을 청한 끝에 1000만원가량인 악기구입비중 70%를 지원받는데 성공했다. 제일제당 용산지역 물류센터의 한구석에 콘테이너를 개조한 연습실도 만들었다.

하지만 몇 달만에 주변 주택가에서 경찰에 너무 시끄럽다는 ‘민원’이 접수돼 연습실을 다시 찾아야 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제일제당 서초동사옥 지하주차장에 보금자리를 찾았다. 본격적인 ‘언더그라운드’로 활동이 시작된 것. 매주 한번씩 연습을 거듭했고 끝나면 소주 한잔으로 우애를 다졌다.

다시다밴드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는 CJ드림소프트의 박숲(31)씨.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연습에 빠진적이 없는 열성 멤버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쳤던 이후로 음악을 연주할 기회가 없었어요. 97년에 입사해 직장생활이 따분해질 무렵 다시다밴드를 만났죠. 직장생활이 다시 즐거워졌어요. 처음엔 시큰둥하던 남편도 지난번 연주회에 찾아와 열성적으로 박수를 쳐줄 정도로 팬이 됐어요.”

‘베이시스트’이자 동호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사’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홍보팀의 김태성과장(36). “같은 그룹 안에 있어도 서로 무슨일을 하는지 알 기회조차 없던 사람들이 연주하고 얘기하면서 절로 서로를 이해하게되고 애사심도 샘솟죠. 조직원들의 ‘끼’를 찾아주는 것, 그게 이 시대 기업의 경쟁력 아닌가요?”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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