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정책심의 5분16초에 한건…중요안건 졸속처리 우려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18분


2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회의실. 금감위 정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회의 안건은 모두 18건. 금감위원 9명 중 위원장인 이근영(李瑾榮)위원장과 비상임위원인 이정재(李晶載)재정경제부차관은 회의에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다.

안건이 모두 통과된 시간은 2시간. 안건당 평균 5분30초가 걸린 셈이다.

이날 회의 안건은 금융감독원 실무국과 금감위 감독법규관실에서 올라온 것으로 중요한 금융정책들이 두루 포함돼 있었다.

▽한 건 처리하는데 ‘평균 5분’〓기획예산처가 25일 밝힌 ‘금융감독조직혁신’ 보고서에 따르면 올들어 열린 금감위 23차례 회의에서 의결된 안건은 모두 439건. 회의당 평균 19건이 안건에 부쳐졌다. 한 건 심의하는데 걸린 시간은 5분16초.

금융감독 정책을 심의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이런 ‘분(分)치기’로 처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기획예산처 감독조직혁신 작업반의 평가다. 작업반장인 윤석헌(尹碩憲)한림대교수는 “439개 회의 안건은 모두 금감위원장이 단독 발의한 것”이라며 “민간인 비상임위원 3명이 안건을 견제하려 해도 정보부족, 심의안건 과다, 보좌인력 결여 등으로 제 역할을 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상임 위원들이 회의 전 열리는 간담회에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시간이 모자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재경부차관은 ‘출석률 0%’〓23차례 회의에서 재경부차관은 단 한차례도 회의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위원 명단에 들어간 이유가 무언지 모를 정도로 회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 한은 부총재는 10번 회의 중 4번꼴로 출석했고 예금보험공사 사장도 절반 정도 회의에 참석했다. 심지어 금감위원장도 출석률이 56%로 저조하다. 위원장 없는 회의가 절반 가까이 됐다는 설명.

▽감독 실패 사례〓금감위가 치밀한 감독체제를 세우지 못하는 바람에 금융감독 업무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감자(減資)파동으로 정책신뢰를 상실한 6개 부실은행 처리과정. 이 바람에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졌고 재경부장관과 금감위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주주보호 정책마저 뒤집는 소동을 벌였다.

진승현(陳承鉉)사건의 핵심인 열린금고 사건 처리도 검사와 제재업무의 중립성을 훼손한 주요한 사례로 지적된다. 열린금고 대주주 불법대출 사실을 2차례나 발견한 금감원이 법령과 규정을 멋대로 해석해 형식적인 임직원 징계조치에 그쳤던 것.

▽금감위 해명〓금감위 고위관계자는 “실제 회의 시간이 짧은 것은 사전에 미리 간담회가 열리기 때문이며 위원 중에서 반대가 있으면 활발한 토론을 거치는 합의제 형태로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재경부차관 한은부총재 예보사장 등 정부인사가 당연직 비상임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회의참석과 상관없이 부처간 업무조율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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