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감사 새 풍속도]"대충대충 이젠 옛말" 돋보기 회계감사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30분


기업들이 공인회계사(CPA)들로부터 연말감사를 앞두고 바싹 긴장하고 있다. 과거처럼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식의 회계감사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업계에서는 내년 3월에 나올 12월 결산법인들의 보고서가 전과는 달리 ‘한정’ ‘부적절’판정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말도 공공연히 나돈다. 기업입장에서 감사보고서가 한정이나 부적절 판정을 받게 되면 자금시장에서 돈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건성 건성’ 감사는 끝났다〓사실 요즘 회계사들은 ‘독’이 올라 있다. 23조원에 이르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가 밝혀지면서 회계사들이 검찰에 고발되고 업계 ‘빅 5’중 하나였던 산동회계법인이 지난달 27일 문을 닫은 이후 ‘시장의 1차 파수꾼’이라는 자존심이 망가진 상태.

당연히 감사가 한층 엄해졌다. 한 건에 몇백만원에서 수억원의 감사수수료를 받고 감사를 잘못했다가 채권단 소액주주 외국인투자가들로부터 수백억원의 소송을 당하고 회계법인 자체가 아예 문을 닫는 상황이 왔기 때문.

업계판도도 크게 변했다. 재계로 따진다면 5대재벌 중 하나였던 산동회계법인이 문을 닫고 삼정회계법인이 외국의 빅5중 하나인 KPMG와 제휴, 빅5로 떠오르는 등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요즘 각 회계법인은 1년중 가장 바쁜 시기. 국내기업중 12월결산법인이 87%에 이르기 때문에 12월에 감사준비작업이나 실사작업을 하고 1월과 2월에는 재무제표를 감사, 3월에 보고서를 내놓는다. 회계사들은 요즘 문제기업의 자료를 정밀분석하거나 기업이 제출한 자료중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자료를 요구한다. 재고자산이나 외상매출(매출채권)은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저녁때 술을 사면서 “한번 봐달라”고 사정하는 것은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한다. 미묘한 자료에 대해서는 감사가 끝나기 직전에 내놓아 회계사들이 자세하게 검토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법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D기업의 경리담당자는 “공인회계사가 ‘당신이나 나나 감옥에도 갈 수 있다’고 말을 하면 자료를 내놓지 않을 수 없다”며 “감사가 너무 빡빡해졌다”고 토로할 정도. A회계법인의 10년차 회계사는 “대우사태 등 일련의 사태에서 회계사에게만 책임을 물어 회계사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있지만 일부 회계사가 중벌을 받으면서 회계사들이 기업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감사의 질적 변화〓감사업무를 따오기 급급했던 관행도 바뀌었다. 요즘 대형 회계법인들은 심리기능을 크게 강화, 문제가 될 기업은 아예 감사를 하지 않거나 감사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감사를 성실하게 받겠다”는 다짐을 받고 있다. 삼정회계법인 강성원대표는 “한 건 잘못된 감사가 법인의 존폐를 결정하기 때문에 계약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 회계법인이 투명성이 높은 기업들만 맡으려하기 때문에 부채가 많거나 회계관리를 못하는 것으로 소문난 기업들은 아예 회계계약조차 체결하지 못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감사가 엄격해지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실사작업이 늘어나는 것외에 전산감사(CAS)도 생겨나고 있다. 삼일 안건 등 대형 회계법인들은 전산감사팀을 두고 기업들이 자료를 가공하기 전에 중간회계자료까지 감사하고 있다. 기업이 ‘숫자 장난’을 하기 전에 감사를 하겠다는 의도. 공인회계사회 유태호 기획부장은 “아직도 기업 경영자의 회계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업무를 맡은 공인회계사의 책임만 강화돼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병기·김승진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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