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멈춰선다…철강 유화업종 감산체제 돌입

  • 입력 2000년 12월 3일 19시 10분


“한 대에 400억원이 넘는 비싼 설비를 놀리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기계를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형편이라 가동을 중단했지만 공장을 둘러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3일 오전 전남 여천 석유화학산업단지의 A사 공장. 수천개의 화학제품 탱크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대형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 회색 반응로에서는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공장 곳곳에는 가동을 멈춘 기계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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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직원들이 기계를 정비하는 작업에 투입됐지만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는 표정. 이 회사 현장팀장은 “유가상승으로 원료비가 올랐지만 과당경쟁으로 덤핑물량이 나오는 바람에 제값을 받지 못하는 처지”라며 “IMF위기 때도 기계를 멈추지는 않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A사는 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LLDPE)을 생산하는 3개 공정중 한곳의 가동을 11월 중순부터 중단했다. 이달부터는 인접공정의 조업도 추가로 단축한다.

▽본격화되는 가동률하락〓LG석유화학은 유화제품 원료인 에틸렌 생산량을 5∼7% 줄이기 위해 이달부터 여천공장의 나프타분해시설(NCC)을 덜 가동하고 있다. 삼성석유화학도 주요 제품의 생산량을 내년 3월까지 매월 25% 가량 줄이기로 했다. 요즘 여천단지내에선 “그쪽 공장은 얼마나 감산하느냐” “우리는 10% 줄인다는데 B사는 형편이 더 어렵다더라”는 등 근심어린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공장이 활기를 잃기는 수도권도 마찬가지.

경기 반월공단에서 승용차 부품을 생산하는 B사는 라인의 50%만 돌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우자동차 공장이 다시 가동하게 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당분간 설비 전체를 돌리는 것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반월공단내 자동차산업 관련업체의 가동률은 46%에 불과하다. 10월 반월공단의 전체 가동률은 83%였으나 대우차가 부도처리된 이후 가동을 멈추는 공장라인이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감산추세〓공급과잉과 이에 따른 조업 단축은 미국 경제의 경착륙 조짐과 맞물려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로 꼽히는 다임러크라이슬러사는 이달중 북미지역 공장 10곳 가운데 7곳을 임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GM과 포드도 연간 1200만대 이상의 만성적인 자동차 공급초과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 감축을 검토중이다.

국내에서는 만성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철강 화섬업종 등이 이미 경기하락에 대비해 사실상 감산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불안→소비심리 위축→수요 감소→재고 누적→공장가동 중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본격화하는 단계로 해석하고 있다.

<여천〓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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