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제2위기 오나/전문가 긴급대담]

  • 입력 2000년 11월 22일 19시 10분


《부실기업의 퇴출이 발표되고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나 경제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현대건설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조정 정책의 혼선과 정치공백 경기급락 등 국내 사정에다 유가상승 환율불안 등 대외요인이 위기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침내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다시 하락하고 있다. 본지는 ING 베어링 빌 헌세이커 상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존 버튼 서울특파원, 삼성증권 이남우상무 등 경제전문가들을 22일 동아일보사로 초대해 ‘한국 경제―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을 가졌다. 》

▽사회〓국내외 경제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21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67.5원까지 올라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 한국경제의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인가.

▽헌세이커〓한국 기업들이 6개월 내로 갚아야 할 높은 이자율의 회사채를 어떻게 처리할 지가 문제다. 현대전자 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 위기에 빠진 투신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고육책으로 꺼낸 후순위채권(CBO)이나 하이일드펀드의 만기 연장도 어려운 숙제다.

▽버튼〓97년에는 외채상환에 실패했으나 지금은 이윤을 내지 못하는 국내 기업이 문제다. 한국은 98년 ‘황금 기회’를 놓쳤다. 당시 한국인은 ‘누군가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떤 급격한 변화도 수용할 수 있었지만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2년간 100조원대의 공적자금이 은행을 통해 기업에 퍼부어졌으며 국제적인 정보통신(IT) 붐으로 투자와 소비가 함께 늘었다. 당분간 경기하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남우〓구조조정을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마무리짓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그리고 나서 지나치게 위축된 경기를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사회〓현대건설 등 현대그룹 문제 처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 현대건설 독자생존은 잘못 ▼

▽헌세이커〓현대건설을 독자생존하도록 한 것은 곤란하다. 물론 문을 닫도록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을 외국인에게 파는 것은 논의조차 안됐다. 해외매각되면 단기적으로 실업은 늘어날 수 있지만 좋은 외국인 경영진이 와서 현대건설의 축적된 기술과 브랜드 파워를 활용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의 중장비부문도 98년 스웨덴 볼보에 매각된 뒤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버튼〓정부는 현대건설 사태를 자금불일치(mismatch)로 보고있지만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 동의할 수 없다. 현대건설 문제는 신뢰의 문제로 국면이 달라져 있다. 또 현대전자도 문제다. 현대전자가 앞으로 1년 내에 갚아야 할 빚이 수조원대다. 또 어떤 식으로든 숨겨진 ‘폭탄(bomb·부채)’이 터져 나올 것이란 시각이 있다. 막대한 추가투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모르겠다. 대만 미국기업이나 네덜란드의 필립스 등 현대전자를 살 수 있는 기업이 많지만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

▽사회〓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버튼〓금주 초 만난 정부의 고위 인사는 여전히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고 되풀이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뛰어난 경제 관료들이지만 안타깝다. 외국인 투자자와 시장은 한국경제의 기본이 좋다는 말을 믿지 않고 있다. 한국 언론도 한국 편향(Korea―biased)의 시각으로 위기국면을 제대로 짚어주지 못했다.

▽헌세이커〓정치적인 리더십 부재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당국자의 결정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어떻게 오늘의 문제를 안정시킬(stabilize) 수 있을까’ 하는 데 맞춰져 있다. 또 너무나 ‘민주적’이어서 책임 있는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 언론 등 외부비판이 나오면 다음날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해 왔다. 투신사 처리문제도 고객의 환매 요구가 빗발치자 CBO나 하이일드펀드가 제시됐고 상황이 더 나빠지니까 세금우대 펀드가 나왔다. 내년엔 어떤 정책을 제시할 것인가.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이 미뤄지기만 했다.

▼ 내년 스태그플레이션 희박 ▼

▽사회〓내년 상반기 경기전망은 어떤가.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기도 하고 정부는 반대로 상반기 이후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데….

▽버튼〓정부가 회사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남우〓스태그플레이션은 가능성 없는 이야기다. 1·4분기에 바닥을 친 뒤 2·4분기부터 나아져 상반기에 4% 정도는 성장할 것이다. 정부로선 경기 부양정책 수단이 있고 수출도 다소 환율 상승에 따라 늘어날 것이다. 물론 내구재 사용이 30∼40% 줄어드는 등 소비위축이 전망된다. 저금리정책이 유지된다면 물가는 4% 가량, 수출성장률은 10∼11%가 기록될 것이다. 내년에는 정부의 금융정책이 중요해지지만 환율이 계속 오를 경우 정책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버튼〓정부가 기업부실채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다. 대체적으로 올해보다 다소 떨어진 5∼6% 성장할 것으로 보지만 나는 좀더 비관적이다. 4% 정도로 본다. 외부 요인에 강하게 작용될 것이다. 물론 한국에는 잠재 가능성이 많아 외국인 투자자는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헌세이커〓원유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요인 때문에 내년에 소비자 물가상승이 예상된다.

▽사회〓내년부터 외환자유화, 종합과세, 예금부분보장제가 실시된다. 자금의 외국유출에 따른 국내 자금시장의 불안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헌세이커〓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아직 완전히 자유화된 금융시스템이 없어서 유출가능성이 그리 크지않다.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돈이 많이 빠져나갔고 일부 애국적인 기업가들만 국내에 투자했기는 하다.

▽사회〓대우자동차 처리도 내년 한국경제의 핵심 변수다. 노조문제 등의 해법이 무엇인가.

▽버튼〓대우차 채권단은 미국 GM자동차로부터 50억달러 가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투자자의 경쟁을 부추겨 더 많이 받으려다 매각작업을 그르쳤다. 대우차는 쪼개서 팔 수밖에 없다. 노조문제는 외국투자자에게 늘 걸림돌이었지만 대우자동차 노조가 왜 우리만 책임져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것도 일부 이해가 된다. 왜 김우중회장은 외국에 놔두고 노동자만을 문제삼는가. 형평성을 잃으면 신뢰받지 못한다.

▽사회〓한국기업과 정부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버튼〓서울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에 북유럽에서 근무했다. 핀란드는 1990년대 초 러시아 붕괴로 엄청난 경기하강을 겪었다. 실업률이 15∼18%까지 치솟았다. 노키아는 고무나 목재산업 대신 정보통신 분야로만 집중하는 정책을 폈다. 집중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가능했고 우수한 부품업체도 키울 수 있었다. 오늘날 노키아는 이렇게 태어났다. 한국 기업에 훌륭한 교훈이 될 수 있다.

▼ 구조조정엔 마감시간 없어 ▼

▽이남우〓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을 빠른 시일 내에 완결지어야 한다. 구조조정은 마감시간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세이커〓교과서에 실린 원칙을 정확히 따르라고 충고하고 싶다. 지난 30년간 한국 정부가 밟아온 길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10년 뒤를 생각해 보면 해법은 하나다. 10년 뒤에 후회할 일을 피해야 한다.

<대담〓허승호금융부차장·정리〓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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