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구제요청 3년-경제 어디로 가나]경제 '3大 위기' 우려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33분


97년 11월21일 한국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한국경제는 IMF위기와 같은 난국에 다시 빠질 수도 있다는 징후들이 뚜렷해지고 있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신규채용을 거의 중단한 상태다. 대학졸업생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고 가정에서는 우유마저 끊어야 하는 형편이다. 경제위기가 다시 오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노점상과 노숙자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 대외신인도 추락위기 ▼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공백과 지도력(리더십)상실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경기급락에다 구조조정지연으로 대외신인도마저 떨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겉보기엔 경제성장률과 외환보유고 등 일부 거시경제지표가 아직도 양호하다. 하지만 펀더멘털이 괜찮다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다가 시기를 놓치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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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감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20일 “정치공백과 노조파업 등에 따른 구조조정지연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정치권과 정부가 리더십을 회복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도 정치공백 구조조정지연 경기급락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할 3대과제로 지적하고 있다.

97년 11월과 최근의 정치경제상황 비교

항 목현재97년11월
리 더 십국회파행, 정부정책 불신 등 리더십 상실금융개혁입법 부진 등 리더십 부재
구조조정공적자금투입 지연과 노조파업 등으로 부실기업퇴출 및 부실은행 정리 지연

한보 기아그룹 처리지연

외부환경

국제유가상승, 반도체가격 하락, 미국 등 선진국 경기후퇴 우려태국 홍콩 외환위기로 우리에게 직접적인 타격, 일본도 장기불황
거시경제경상수지흑자, 외환보유고 930억달러, 상반기성장률 9%대 등 지표상으로 양호 외환보유고 급감(38억달러), 경상수지적자 등 불안
재 정국가채무 연말에 230조원 예상(보증채무포함)흑자재정, 재정확대할 여유

▼ 정책실패로 민심 이반 ▼

▽새로운 위기 징후〓정치와 정책의 잇따른 실패로 인한 신뢰하락과 민심이반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의 탄핵을 둘러싼 국회파행으로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위한 국회동의가 늦어져 정부가 연말까지 끝내겠다는 구조조정 일정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는 대외신인도 하락과 연결되고 있다. 유한수 CBF금융그룹 회장은 “외환위기는 외환보유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신뢰상실에 따른 대출금회수와 자금이탈에 의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무책임한 사정(司正) 논의로 공직자의 복지부동과 기업의 투자심리불안을 유발하고 있다. 기업들은 당국의 각종 조사를 받느라 투자는커녕 정상적인 영업활동조차 차질을 빚고 있다며 호소하고 있다.

노조를 비롯한 이해집단의 이기주의도 문제다. 부도난 대우자동차는 법정관리마저 불투명하며 은행 구조조정도 험난한 실정이다. 현대건설의 자구계획에 대한 시장반응도 썰렁하다.

게다가 일부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로 인해 부실대기업의 정리도 미완성이다.

대외여건도 악화되고 경기도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30달러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주력수출품인 D램 가격도 폭락중이다. 미장원과 병원도 손님이 줄어 불황이다. 대학 졸업생들은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실업자도 크게 늘어날 조짐이다.

그런데도 정책수단이 거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돈을 풀어도 투자나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다. 국가채무가 올해말 230조원에 이르러 재정정책도 펼 수 없는 상황이다.

▽대만발 위기에 빠질 우려〓한국경제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낙관론을 유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올 4·4분기부터 잠재성장 수준인 5∼6%대로 복귀하는 과정이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97년에도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은 “펀더멘털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까지도 위기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서강대 이상승 교수(경제학)는 “97년과 같은 외환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나 “부실기업과 공기업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할 경우 금융과 실물위기가 가시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화증권 진영욱 사장도 “최근 들어 대만의 정치경제가 상당히 불투명하다”며 “97년엔 방콕발 위기였는데 지금은 타이베이발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 있다”고 전망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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