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해법 헷갈려…정부-채권단-현대 혼선 거듭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27분


‘도대체 현대건설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냐.’

증권시장에서 정부 채권단 현대건설 등 3자의 움직임을 보면 “가닥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럽다”는 말들이 많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것은 정부는 가급적 현대건설의 부도를 피해가고 싶은데 현대측이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산뜻한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는 피해가고 싶다〓원칙대로라면 현대건설은 진작 부도처리가 됐어야 옳다. 10월31일 1차 부도 이전에도 현대는 사실상의 부도를 수차례 냈다. 그때마다 외환은행의 도움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정부나 채권단이 현대건설의 부도를 피해가고 싶은 것은 부도여파가 너무나 크기 때문. 우선 현대건설의 부도는 해외건설시장에서 ‘한국’의 퇴출과 같다. 현대건설은 한국 건설업체 해외건설수주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건설수주가 공사경력과 신뢰(credit)로 움직이는 점을 감안할 때 현대건설이 퇴출되면 이 회사를 대체할 마땅한 대기주자가 별로 없다.사실상 해외건설을 포기하는 셈. 1만5000여개에 이르는 하청업체의 연쇄도산도 큰 부담.

또 사업장이 수백여 곳에 흩어져 있어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관리인이 회사를 통제하기 어렵다. 현장소장이 ‘왕’인 건설업 특성상 각 사업장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경우 회사는 무너지기 쉽다. 또 현대건설은 올 영업이익이 8000억원에 이르는 등 회생이 가능한 회사라는 점도 작용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 시장의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현대건설에 때로는 경고를, 때로는 “혈족들이 나서라”고 충고해가면서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현대 배짱행보의 업보〓정부 의중을 잘 아는 현대의 최고위층은 줄곧 배짱을 부려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인내심이 임계점을 넘어서 “진성어음을 막지 못하면 출자전환을 하든지 법정관리를 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면서 이제야 착각에서 벗어나고 있다. 공포탄만 쏴대던 정부가 이제 ‘진짜 총알’을 채운 것을 깨달은 것.

현대는 최근 그룹전체가 현대건설에 발목이 잡혔음을 절감하고 있다. 시장논리대로라면 현대는 최악의 상황에서 현대건설의 대주주지분과 계열사 지분만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현대측이 현대건설을 포기할 경우 전체 계열사의 신뢰도가 추락, 그룹전체가 공멸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오너의 위기관리능력부족으로 모기업을 날릴 경우 현대건설 직원은 물론 다른 계열사 직원들로부터 충성심을 기대할 수도 없다.

정몽헌(鄭夢憲)회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그러나 그간의 ‘배짱행보’가 이제 업보로 작용하고 있다. 채권단에서는 현대가 한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못믿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친족 대부분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계열사 사장들마저 “현대건설을 명분없이 지원했다가 소액주주들로부터 배임죄로 소송당한다”며 발을 빼고 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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