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씨 車지분 매각]MK '따돌리기' 기습작전인가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36분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명예회장의 주식매각은 ‘테러진압작전’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주식매각을 둘러싼 정부와 현대의 실랑이는 52일을 끌었지만 매각은 6분만에 끝났다.

이번 주식매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식을 매입한 기관 및 개인투자자에 대한 정밀검토작업을 마친 뒤 ‘문제가 없다’고 판정을 하면 사실상 자동차부문의 계열분리는 확정된다. 현대자동차는 공식입장을 삼가면서 지분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딘 플레밍과 협상결렬〓자딘 플레밍측은 20일 현대측에 “해외투자가들을 모집, 1000만주이상을 사주겠다”고 현대측에 제시해 21일밤 현대와 자딘플레밍측과의 매각협상은 타결직전까지 갔다.

22일 오전 2시. 자딘플레밍측이 현대 구조조정본부에 전화를 걸어와 “뉴욕 홍콩 도쿄 등 해외투자가로부터 공모를 했으나 250만주의 매수주문밖에 확보하지 못했다”고 통보했다.

현대측은 즉각 회의를 소집했다. 자딘플레밍측에 250만주를 팔아봤자 1000만주가 남고 시간이 촉박하니 22일 장중매각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자딘플레밍이 제시한 주당 1만5100원이라는 가격도 헐값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현대는 자딘플레밍측에 전화를 걸어 “22일 전량을 장중매각할테니 일반 기관투자가의 자격으로 매수주문을 내라”고 통보했다.

▽6분만의 매각〓22일 오전 8시20분. 현대증권은 각 기관투자가에 연락, “현대차 주식을 1만5600원선에 팔테니 매수의사가 있는 기관은 매수의사를 밝히라”고 통보했다. 1700만주의 매수주문이 나왔다.

현대측은 개장직후인 9시10분경 1만5600원선으로 가격을 정해 물량을 풀기 시작했다. 매매는 9시13분부터 9시19분경까지 6분여에 걸쳐 이뤄졌다.투신 증권 은행 보험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와 ‘큰손’ 등 개인들도 대거 ‘사자’주문을 냈다. 1만5800원을 제시한 기관들이 먼저 주식을 사갔고 이어 1만5600원을 제시한 기관이나 개인들이 주식을 사갔다. 곧 1280만주가 모두 팔렸다. 1만5100원에 매수주문을 내고 가격하락을 기다리던 자딘플레밍측은 한 주의 주식도 확보하지 못했다.

▽남은 불씨 없나〓현대자동차의 주식을 사들인 기관이나 개인이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나 현대측과 특수관계인 것으로 밝혀지지 않는 한 자동차 계열분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鄭夢九) 정몽헌(鄭夢憲) 형제는 법적으로는 경영권을 놓고 다툴 대상이 없어지는 셈. 그러나 재계 일부에서는 두 형제가 극적으로 화해하지 않는 한 또다른 형태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반응〓현대차는 현대측이 매각방법을 자꾸 바꾼 게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지만 공식적인 대응은 삼가고 있다. 명단공개 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

그러나 현대차는 현대 구조조정본부측이 현대차측과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오전에 전격적으로 주식을 팔아버린 사실과 현대차측에는 한 주도 살 기회를 주지 않은 것 등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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