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바쁜데…" 어지러운 대우車 매각

  • 입력 2000년 6월 28일 18시 52분


대우자동차 매각을 둘러싸고 부품업체 사이에 이해 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대우차 인수업체로 사실상 포드 및 GM을 배제하는 의미인 해외매각 반대론과 관련, 이해당사자들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우차 부품협력업체들의 모임인 대우자동차협신회는 28일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 당국에서 현대자동차-다임러크라이슬러 컨소시엄이 대우차를 인수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협신회는 탄원서에서 “현대차의 대우차 인수참여는 시장 독점으로 국민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독점 방지와 국가 자동차 산업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정책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대우차 협력업체 입장에선 현대 컨소시엄으로 대우차가 넘어갈 경우 현대측 부품업체를 위주로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재편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민노총과 현대 기아차 협력업체들은 ‘해외 매각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현대 기아차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자동차부품산업생존대책위위원회는 27일 기자회견에서 “대우차를 해외기업이 단독으로 인수할 경우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이 붕괴한다”면서 현대-다임러 컨소시엄이 대우차를 인수하는 게 바람직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는 해외매각 반대 여론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을 삼가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고위관계자는 민노총의 ‘대우차 공기업화’ 주장과 관련, “이는 정부가 채권단이 주도하는 대우차 입찰에 참여하라는 얘기와 같은 것”이라고 전제, “공기업 비효율을 시정한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민영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올 봄 방한,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를 방문했던 유럽연합(EU) 자동차업계 대표들은 “현대와 기아차가 정부가 대주주인 금융기관들로부터 보조금을 받고있다”며 시정해줄 것을 요청, 정부측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차마저 공기업화한다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 장벽이 더욱 두터워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해외에 매각할 경우 부채 탕감 및 원리금 유예 등 특혜를 요구할 것이란 주장에 대해 정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채권단이 매각조건으로 고려해볼 만한 사항이며 외국업체와 마찬가지로 현대-다임러 컨소시엄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대우차 내부에서는 해외 매각 불가피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사무직의 경우 일찍부터 현대차에 인수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88%가 해외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생산직이 중심이 된 대우차 노조측은 당초 공기업화를 전제로 해외 매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여왔으나 공기업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짐에 따라 ‘고용보장이 전제된다면 굳이 해외매각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래정·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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