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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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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정부가 시장안정을 빌미로 대마 살리기를 부추기고 있어 집권 초 내걸었던 ‘시장주의’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시장이 흔들리면 무조건 살린다’〓8일 정부의 한국종금에 대한 2800억원 지원은 ‘덩치가 크면 정부가 죽이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남겼다. 같은 날 정부 고위관계자는 “금융기관 부도는 무조건 막는다”고 공언했고 재경부 등은 ‘주인이 있는 금융기관은 대주주가 손실을 책임진다’는 원칙도 깨가며 시장안정을 외쳤다.
대한투신과 한국투신은 지난해 3조원에 이어 이달내 4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또다시 얻어 쓴다. 정부는 증권사로 전환한 두 투신사의 회생을 낙관하지만 증권업이 과당경쟁 회오리에 휘말려있어 ‘밑 빠진 독’이 된다는 우려가 높다.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은 “제일 서울은행을 무리하게 살리려 했던 것이 화근이 됐다”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뼈저린 교훈을 얻었는데 또다시 임기응변에 매달린다는 것.
대우그룹의 몰락도 사실은 정부 의도가 빗나간 결과였다. 시장이 사형선고를 내렸던 지난해 7월 정부는 은행 투신권을 닦달해 4조원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케 했고 이 자금의 30, 40%는 고스란히 금융기관 부실로 남아 2차 구조조정을 재촉하고 있다.
▽정부, “시장이 무너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의 논리는 명쾌하다. 금융기관은 ‘도미노효과’가 크기 때문에 연쇄부도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 금감위 관계자는 “최근 회사채 시장이 죽고있어 단기 기업어음을 할인해주는 종금마저 무너지면 기업들의 자금창구가 사라진다”고 반박했다.
금융전문가들은 그러나 “정부가 퇴출을 방치할 경우 단기적인 시장충격의 혼란과 확고한 시장원칙이 가져올 장기적인 이익을 견줘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관료의 속성상 일단 혼란을 봉합하는 쪽에 매달리게 돼있다는 설명.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정부는 현재 상황논리에 매달리기 보다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돈이 없는 재경부가 공적자금 투입을 남발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관은 퇴출시키고 시장혼란은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더 낫다”고 말했다.
▽민간의견 개입될 여지가 없어〓‘대마살리기’로 평가받는 주요정책들은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구조개혁단)가 골격을 짜고 청와대가 의견을 냈다. 주로 옛 재무부 이재국시절 과장 사무관 등으로 손발을 맞춘 관료들로서 자리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같은 정책상의 ‘순혈주의’를 차단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 인력 아웃소싱제도인 ‘개방직제’. 그러나 기획예산처 이계식 정부개혁실장은“부처마다 유명무실하게 활용하고 있어 효과가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