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돈 덜 풀렸다…작년보다 1兆 적어

  • 입력 2000년 4월 7일 20시 03분


선거를 치르다보면 시중에 현금이 넘쳐날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과는 달리 정부 통계로는 오히려 평소보다 돈이 덜 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느끼는 ‘체감 통화량’과 정부가 공식 집계한 ‘지표 통화량’ 간에 괴리가 발생한 셈.

▼작년보다 1兆 적어▼

7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올 1·4분기(1∼3월)중 정부가 각 부처에 대해 예산집행을 허용한 자금배정액은 22조5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3조7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 줄었다. 최소한 재정부문에서는 작년보다 1조원 이상 돈이 덜 풀렸다는 의미.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은 “정부는 결코 여당의 선거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거나 무분별하게 돈을 찍지 않을 것”이라며 “따라서 선거가 끝난 뒤 물가가 갑자기 치솟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조사에서도 화폐 발행액은 올들어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3월말 현재 화폐 발행액은 총 17조440억원으로 작년말(22조5733억원)보다 5조원 이상 줄었다. 화폐발행액과 지준예치금을 합한 본원통화도 작년 1·4분기에는 1조7000억원 증가했지만 올들어서는 3조5000억원 감소했다.

▼유통속도 빨라 물가압박▼

작년 말 Y2K 현금수요에 맞추기 위해 일시적으로 찍었던 화폐 중 상당규모가 다시 한은에 회수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기상승 국면에서 통화량이 줄어든 것은 눈길을 끌 만한 현상. 3월중 소비자물가도 전월보다 0.3% 상승하는 데 그쳐 대체로 안정세를 유지했다.

재경부는 후보들이 예금을 찾아 선거운동 자금으로 쓰더라도 이 돈이 선거운동원 등의 은행계좌를 통해 다시 금융권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예금주만 바뀔 뿐 전체 통화량에는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 관가 일각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사업시기가 대부분 하반기 이후로 미뤄져 있어 실제 예산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영향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소비가 늘면 통화 유통속도가 빨라져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돈이 덜 풀린 것은 다행이지만 인플레 우려가 없을 것으로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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