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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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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는 현금이 아닌 주식.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이 평가한 세경측이 주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저작권 보안기술 벤처인 ㈜디지캡도 1일 설립과 함께 발행 주식 5%를 주는 대가로 법률기획사인 ㈜로서브와 법률자문 및 컨설팅 계약을 했다.
‘리걸 캐피탈(Legal Capital)’은 이처럼 벤처사업과 법의 영역이 ‘경영권’을 의미하는 주식을 매개로 결합하는 현상을 지칭한 신조어.
이제 벤처기업가들에게 법은 곧 ‘돈’이자 ‘생존’이며 단순한 분쟁해결 수단이 아니라 ‘기술’ ‘자본’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벤처의 핵심 구성요소로 통한다.
벤처전문 김정욱(金政旭)변호사는 “머지않아 벤처기업 CEO(chief executive officer)의 자리를 CLO(chief legal officer)가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황▼
기술자 집단으로 시작되는 벤처기업은 법에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 반면 벤처기업 설립에서부터 특허취득, 상장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은 법률행위의 연속. 또 법률이나 정책 등 벤처를 둘러싼 외부 법률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누가 법을 먼저 아느냐가 때로는 사업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세경의 이종무(李宗懋)변호사는 “벤처는 기존 기업보다 조직이 연약해 인력이나 특허 분야에 중대한 송사가 발생하면 생존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핵심 인력들이 전 직장과 맺은 비밀유지나 경쟁업종 취업금지 계약 때문에 되돌아가거나 이 과정에 창업 아이디어를 빼내가는 일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자제품 제조사인 한 대기업이 3월초 동업종 벤처 9개사에 “인력을 빼 내가면 민 형사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인력 스카웃이 잇달아 무산된 사례가 있다.
특허 역시 창업 때부터 법률관계를 잘 따져야 미래에 발생할 특허권 분쟁에 대비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3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이윤창출 모델(BM)이 특허로 등록되면서 유명 벤처들이 특허권을 놓고 생사를 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을 정도.
경쟁업체에 특허를 빼앗기면 창업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특허에 대한 문서보다 특허소송에 대비한 서류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송사(訟事)는 투자 유치의 적이다. 김변호사는 “투자자들은 아무리 전도가 유망해도 소송에 걸린 곳에는 투자를 꺼린다”고 말했다. 벤처에 대한 법률자문은 분쟁 소지를 사전에 막는 ‘예방법학’의 전형인 셈이다.
▼전망▼
업계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유명 로펌들이 앞다투어 ‘벤처팀’을 구성하고 있는 가운데 1일에는 ‘벤처전문 로펌’을 표방하는 ‘지평(대표 강금실 변호사)’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구성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며 회사 내외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CLO’변호사의 탄생도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인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