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연봉제 인식차이]"실적평가"- "프로야구식 협상"

  • 입력 2000년 3월 28일 19시 41분


미국인을 만나 물으면 실례가 되는 질문 3가지. “몇살이냐”,“결혼했느냐”, 그리고 마지막이 “연봉이 얼마냐”는 것.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현실이다. 최근 연봉제를 도입하거나 일반 사원에게까지 확대하고 있는 삼성 LG 현대 등 국내 대기업들은 3월말까지 직원들과 계약을 마칠 예정.

국내에 들어와있는 외국기업들도 마찬가지로 3월말이면 연봉계약을 끝낸다. 외국기업들의 연봉제도와 국내 대기업 연봉제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외국기업의 연봉제〓유럽계 보험회사인 A생명보험이 한국지사에 4월 도입할 예정인 ‘브로드 밴딩 시스템’(Broad Banding System)은 LG 등 대기업도 추진하고 있는 미국식 연봉제도의 최근 조류. 대리, 과장, 이사같은 직급을 없애고 사원, 주임, 차장, 부장, 부사장 5단계의 ‘경력단계’로 통합하는 것이 골자다. 20단계의 호봉제도를 완전히 폐기, 사원과 주임급만 연봉 최저치와 최대치가 정해지며 나머지는 직급과 상관없이 이론상 ‘무제한’으로 연봉을 줄 수 있다.

연봉 결정권한은 부장, 부사장 급의 매니저가 갖는다. 연말마다 다음해 ‘성과 목표’를 제출받아 1년동안 3번의 중간평가와 연말평가를 한 뒤 3월중 직원에게 새 연봉을 통고한다. 불만있는 직원들은 매니저와 대화를 통해 평가를 조정하게 된다.

외국기업들은 브로드 밴딩 시스템 외에 △회사내의 중요한 부문에 연봉과 점수를 추가하는 ‘포인트 팩터 시스템’ △직무별로 연봉순위를 미리 정해두는 ‘호울 잡 슬로팅’ △시장가치에 따라 개인의 연봉을 정하는 ‘랭크 투 마켓’ 등을 병행하고 있다.

▽국내 연봉제와의 차이점〓인사관리 전문컨설팅업체 ‘휴잇(Hewitt) 어소시엇츠’ 한국지사의 장학수(張學秀)지사장은 “낯선 서구식 연봉제를 받아들이면서 한국 직원들이 연봉제를 ‘프로야구의 연봉협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말한다. ‘연봉제’라는 말은 단지 1년 단위로 급여를 계산한다는 의미. 한국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서구식 연봉제’는 사실상 ‘성과에 따른 급여’(Pay Per Performance), 또는 ‘성과급’(Merit pay) 제도를 뜻한다고. 용어상의 차이가 ‘연봉제는 프로야구 연봉협상’이라는 오해를 심어줬다는 설명이다.

외국기업은 △업무실적 △시장에서의 몸값 △회사의 경영성과 등을 고려해 개인에게 연봉을 제시하며 실제로 직원의 95%이상은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다. 불만족스러울 경우 ‘협상’이라기보다 ‘면담’을 통해 연봉이 조정된다.

세금문제로 인해 비대해진 수당체계도 문제. 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孔善杓)인사조직실장은 “국내 기업의 연봉제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까지 각종 수당이 따라붙는 월급을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다”면서 “진정한 연봉제로 가기 위해서는 업무실적과 무관한 수당부분을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이 연봉을 개인과 상호 동의하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있다는 점, 부하직원 평가를 담당하는 매니저에 대한 교육도 미흡하다는 점 등이 외국계 인사문제 컨설턴트들의 지적이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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