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금감위-한은 정책주도권 다툼…'짝짓기' 신경전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7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바뀌고 한솥밥을 먹던 ‘옛 식구’는 눈엣가시가 됐다.

금융정책 운용의 3대 축인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 등 3자가 최근들어 사안별로 견제와 협력이 엇갈리면서 미묘한 관계를 연출하고 있다. 얽히고 설킨 3자간의 합종연횡은 업무영역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초전은 채권중개기관 관할 다툼〓3자의 이해가 맞부닥친 첫번째 무대는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해 7월경 도입될 예정인 채권중개브로커(IDB)의 관할권.

금감위는 “채권중개도 넓게 보아 증권사 업무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IDB가 설립되면 금융기관에 준해 금감위가 인허가권과 감독권을 보유하는 게 타당하다”는 논리를 폈다.

한은은 “채권거래를 단순히 중개하는 브로커를 건전성 감독대상인 금융기관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라며 자금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감독기능은 중앙은행이 보유해야 한다고 맞섰다.

법령 개정권을 갖고 있는 재경부는 “한은이 국채발행을 통해 채권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는 만큼 통화정책 담당자로서 채권거래 과정의 이상징후를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며 감시기능을 한은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

한은 실무자는 “재경부의 한은지원은 불과 3년 전 한은법 개정 등을 놓고 맞섰던 때와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3개 기관 실무자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갖고 절충안을 모색했지만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본선은 양해각서 체결〓금융계는 3자간의 신경전이 올 하반기 MOU체결 때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업무영역에 대한 MOU체결 필요성은 당초 재경부가 제기했지만 최근 들어 금감위가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인 모습. 내년부터 예금보호한도가 1인당 2000만원으로 축소되고 금융기관 건전성에 따라 예금보험료율이 차등화되면 금융기관 감독에 대한 재량권 확대를 요구하는 재경부 산하 예금보험공사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

현재 양자간의 양해각서 초안은 금감위측이 작성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안이 산적해있는 상태에서 MOU를 서둘러 체결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은근히 금감위측을 힐난했다. 한은은 재경부의 무리한 금융시장진출 시도는 봉쇄하되 이 기회에 중앙은행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최소한의 장치는 확보해두겠다는 입장. 한은의 공동감독 요구를 애써 외면해온 금감위가 올 2·4분기(4∼6월)부터 은행 공동감사에 나서기로 합의한 것도 재경부 견제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3자간의 신경전이 과거와 같은 막무가내식 영역확대 경쟁이 아니라 상호간의 업무중복을 막고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논리대결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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