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증시 문제점]단기투자가 '한국병' 낳는다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대표적인 간접투자상품인 투자신탁사의 주식형펀드 만기가 길어야 6개월∼1년에 불과해 투신사들이 최대 기관투자가로서 장세버팀목 역할을 하기는 커녕 주가 급등락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은 이같은 투신사들의 주식형펀드에 대한 단타성 투자성향을 거꾸로 이용해 주식형 펀드의 만기 매물이 쏟아질 때마다 우량주를 싼값에 거둬들이고 있어 증시 장세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펀드 반년내외 '승부'▼

▽국내 주식형펀드 투자기간은 6개월 내외〓최대 기관투자가인 투자신탁회사들이 한번 사들인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은 평균 3개월∼6개월 내외. 장기형 펀드라해도 투자기간이 길어야 1년에 그치는데다 펀드가입후 6개월만 지나면 중도환매수수료가 없어 수시로 환매가 가능하다. 특히 투신사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기를 요구하고 있어 펀드매니저들이 장기투자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돼 있다. 평균 4년이 지나야 환매수수료를 물리지 않는 외국과는 대조적이다.

강신우 현대투신운용 부장은 “기관투자가라면 우량주를 3∼5년동안 장기투자할 수 있어야 하지만 투자자들이 3개월∼5개월 단위로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다 해지했다 하는 바람에 장기투자를 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예컨대 삼성전자 주식이 이익을 많이 내는 우량주라 해도 당장 펀드환매가 돌아오면 주식을 내다팔 수 밖에 없다는 것.

▼'장타'외국인 작년 50조원 챙겨▼

▽펀드만기 시점을 이용하는 외국인투자자〓기관투자가들이 이처럼 단기매매에 치중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우량주를 ‘사서 재놓는’ 장기투자를 하기로 유명하다.

실제 지난해 연말 투신사 스폿펀드 만기가 대거 돌아오면서 12월 첫주부터 올 1월 첫째주까지 투신권에서는 2조8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올해 증권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면서도 투신사들이 삼성전자 포철 삼성물산 한전 한국통신 같은 우량주를 내다팔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기수익을 실현한 스폿펀드 가입자들의 해약물량이 봇물을 이뤘기 때문.

투신사들이 스폿펀드 만기물량을 처분하기 급급한 틈을 타 외국인들은 같은 기간동안 투신사들이 내놓는 우량주를 고스란히 걷어갔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지수 800대에서 순매수를 시작해 이후 4개월동안 5조원을 웃도는 한국 주식을 사들이면서 이익을 챙겼다. 증권거래소는 외국인투자자들이 지난 한해동안 한국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매매차익(평가이익 포함)이 무려 50조원이상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투신사 초단타매매 성행▼

▽개인투자자보다 높은 투신사 주식회전율〓단타매매에 치중하는 것으로 알려진 개인투자자들보다 국내 투신사 펀드매니저들의 단타성향은 오히려 더 심한 편. 기관투자가가 장세안전판 역할을 하기보다 장세 급등락의 ‘주범’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투신협회와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주식시장 회전율이 27%인데 반해 투신사의 경우 무려 53%에 달했다. 투신사 펀드매니저가 개인투자자보다 주식을 ‘사고팔았다’ 하는 횟수가 무려 2배이상이라는 설명이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미국의 경우 펀드매니저의 대형가치주 보유기간은 평균 18.2개월이고 소형성장주는 9.3개월”이라며 “이에 반해 국내 펀드매니저는 단기수익을 좇느라 주가가 오르면 덩달아 사고 내리면 팔아치우는 투자성향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펀드매니저의 초단타 매매가 성행하는 이유는 투신고객들 성향이 무위험 단기고수익을 노리기 때문이라는 것.

▼5~10년 장기상품 개발을▼

▽대책은 없나〓‘기관투자가 우량주 투매-외국인 받아가기’ 공식은 비단 개인투자자의 단타성향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증권사와 투신사들이 만기가 1∼3개월에 불과한 스폿펀드를 전략상품으로 내놓고 투자자를 모집하는데다 환매수수료 징구기간도 대폭 단축해 스스로 발목을 잡고있다는 것. 김병포 현대투신운용 대표는 “판매회사들이 수탁고를 높이기 위해 단기상품 발매에 주력하는 행태를 벗어나야 할 것”이라며 “선진국처럼 투자기간을 5∼10년 정도로 하는 장기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법인 교보투신운용 감사도 “펀드매니저가 트레이드(단기 주식매매인)에서 벗어나려면 장기투자가 궁극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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