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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2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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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금감위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부실 금융기관 구조조정 자금으로 64조원이 책정됐으나 부족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국내외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며 금감위의 견해와 대책을 물었다. 이에 대해 윤부위원장은 “64조원은 경제여건이 나쁜 상태를 감안해 책정한 것”이라며 “올들어 경제가 호전되고 있어 예상치 못한 추가부실에도 불구하고 64조원으로 대외신인도를 해치지 않고 금융구조조정을 끝낼 수 있다”고 답했다. 공적 자금 운용계획까지 곁들인 설명이었다.
그런데 사흘 뒤인 1일 이위원장은 외신기자회견에서 윤부위원장과는 다른 말을 했다. 이위원장은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공적 자금이 최고 10조원 정도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고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따른 은행의 부실채권 증가, 대한생명 부실 발생,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적용에 따른 대손충당금 증가 등이 이유로 열거됐다. 사흘 사이에 갑자기 상황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어떻게 타부처도 아닌, 같은 금감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말이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업무보고나, 외신기자회견이나 결국은 국민 앞에 하는 공언이다.
또한 국민부담을 전제로 하는 자금, 더구나 몇억도 아닌 10조원이나 되는 돈의 소요에 대해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가. 이미 책정돼 집행중인 64조원만 하더라도 그 이자부담에서부터 최종적 손실분까지 국민이 떠안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은 경제정책의 실패, 정부와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 기업과 금융 등 시장의 실패 때문에 생긴 부담을 ‘나라를 부도낼 수는 없다’는 심정에서 감내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잘 읽으니까 오히려 국민을 쉽게 대하는 것인가. 몇천억, 몇조원이라는 숫자에 국민도 면역이 돼 있으니까 몇번 반복하면 기정사실화할 수 있다는 계산인가.
2백만명을 헤아리는 실업자, 월수입 몇십만원의 일자리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국민이 여기저기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공적 자금 추가소요가 발생한다면 유리 속처럼 국민 앞에 드러내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권력과 정책권능은 하늘에서 떨어진 천부(天賦)의 것이 아니라 국민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더 겸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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