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빅딜」,정부 입김에 自律 흔들

  • 입력 1998년 11월 23일 19시 14분


어렵사리 ‘재계 자율’의 모양새를 지켜왔던 5대 그룹 사업구조조정에 막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경쟁력 강화라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또 반도체처럼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업종의 경우 정부가 ‘통합’원칙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시너지(복합상승)효과를 살리지 못함과 동시에 적잖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 대우 삼성그룹이 통합법인을 구성하는 항공기의 경우 ‘계열분리 후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이란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곧 발족하는 통합법인의 초대 사장에 교통부장관을 지낸 임인택(林寅澤)씨가 23일 최종 선임됐다. 자본금 5천억원 규모의 통합법인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최대지분을 차지해 자연스럽게 정부의 인선안이 관철됐다는 후문.

전남 순천 출신으로 상공부 차관보, 공업진흥청장을 거친 임씨는 공직 경험(62∼95년)은 풍부하지만 기업체와의 인연은 96년부터 맡고있는 K생명보험 상임고문이 유일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존업체 경영진을 배제하다 보니 인물난이 심했다”면서 “결과적으로 빅딜이 전관 예우차원에서 자리를 만들어준 셈”이라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털어놨다.

업계 일각에서는 “관료 출신이 정부에 대한 로비능력이 있어 정부 출자를 늘리고 예산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외국업체와의 경쟁’을 목표로 빅딜이 추진됐고 조달시장이 개방되는 최근의 국제추세를 감안할 때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적.

7명 내외의 후보자를 놓고 사장선임 작업을 벌이는 철도차량도 산업자원부 출신 차관급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차량 업계는 사장 공채광고까지 냈지만 정부가 최대 주주가 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참신하고 유능한 지원자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철도차량업계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계속 관료출신이 사장으로 오면 결국 경영도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되고 민간자율의 취지도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현대와 LG가 통합하는 반도체의 경우는 정부의 ‘통합 지상주의’와 업계와의 대화단절로 큰 후유증을 예고하는 부분.

산자부 실무선이나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업계가 자율적으로 외자를 들여와 재무구조를 개선하면 상관없다”면서도 “이미 한 통합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 반면 LG반도체는 “외자유치 성사직전에 빅딜협상이 대두돼 보류됐다”며 “통합의 목적이 산업경쟁력 강화라면 외자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래정·이영이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