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계,「밀월」10개월만에 「파경」위기

  • 입력 1998년 10월 12일 19시 06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온 ‘재벌 길들이기’에도 불구하고 ‘불패’의 생명력을 과시해온 5대 재벌그룹. 6대 이하 그룹의 잇단 좌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마불사’의 신화를 고수하고 있는 이들이 드디어 정부의 전면적인 공세에 봉착했다. 국민정부 초기의 ‘협력’분위기는 10개월여만에 ‘파경’으로 치닫고 있다.

재벌체제의 중심축은 대주주의 친정체제 내부자거래 상호지보 등 세가지. 올 4월 비서실 폐지로 닻을 올린 재벌시스템 해체압박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 및 과징금부과로 수위를 높여왔고 이제 재벌체제를 떠받쳐온 ‘문어발’ 계열사들을 반강제적으로 퇴출시키는 방안이 구체화하고 있다.

각 재벌그룹도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당혹해 하면서도 전경련을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5년’을 좌우할 힘겨루기의 고비〓정부 대공세의 발단은 재계가 7일 내놓은 자율 구조조정안이 여론으로부터 ‘함량미달’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부터. 정부는 은행권을 감독하는 금감위를 최후수단으로 동원할 태세다.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측도 개혁의 막바지 변수로 떠오른 기업개혁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

전경련 관계자는 “위태롭게 지탱해온 정재계간 협력관계가 드디어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정부측 구조조정안의 진로에 따라 재계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측 의도가 관철될 경우 정부와 재벌간 기존 구도에 큰 변화가 초래되고 최소 5년 동안 재벌들의 사업구조가 고착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

▼재계의 화전(和戰)전략〓재계는 12일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과징금 부과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 ‘시비를 가린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부당내부거래 사실을 인정할 경우 소액주주나 외국투자가들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

그러나 구조조정과 관련, 정부 공세엔 숨을 죽이면서 정부의 후속조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오너중심경영이 구조조정의 걸림돌’이라는 정부의 최근 평가가 발전설비 반도체 등 구조조정 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를 보였던 현대그룹을 지칭한 것으로 현대에 모종의 불이익이 가게 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재계는 그러나 채권은행단을 매개로 하는 구조조정이 어차피 업체별 재무구조개선계획을 근거로 이뤄지는 만큼 자구계획의 함량을 높이는 선에서 정부측을 설득한다는 방침.

실제로 구조조정 대상업체에 수조원씩 대출해준 은행들이 기업퇴출 등 ‘극약처방’을 내릴 경우 채권단 동반부실, 수출차질 등을 피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측면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재계는 지적한다.

▼재벌에 대한 워크아웃 전망〓재벌압박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은행권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이 제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 6대 이하 그룹에 대한 워크아웃조차 △대상업체 선정기준이 불명확하고 △채무조건 조정시 면책기준이 설정되지 않은데다 △채권단간 이견이 겹쳐 표류했던 것이 사실.

또 금융기관들이 퇴출대상 부실계열사들의 채무를 우량계열사에 떠안기는 등 기업퇴출도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워크아웃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한 계열사간 상호보증이란 고리는 특별조치 등을 통해서만 끊을 수 있다”며 “재벌 압박에 앞서 구조조정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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