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구조조정안]「알맹이」빠진 어설픈 봉합

  • 입력 1998년 10월 7일 19시 04분


현대 삼성 등 5대 그룹이 ‘난산(難産)’끝에 내놓은 사업구조 조정안은 정부의 압박공세와 그룹간 이해관계를 절충한 ‘차선(次善)안’에 가깝다.

내용적으론 지난달 3일 발표한 잠정안에서 진전된 게 별로 없어 ‘기대에 미흡하고 시간만 보냈다’는 비판적인 시각과 ‘특정그룹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재계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연말 구조조정 완결을 목표로 조속한 경영주체 선정을 희망해온 정부로서는 향후 금융감독위원회 등 압박수단을 총동원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공산이 커졌다.

▼‘알맹이’빠진 이원화 구조조정〓5대그룹 총수들은 발전설비 철도차량 사업부문에서 현대측이 단독경영 방침을 고집함에 따라 결국 구조조정 대상에서 현대를 제외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발전설비 분야의 경우 7일 오전까지 막판 협의를 벌였으나 ‘한국중공업 민영화시 33%의 지분을 약속해달라’는 현대측 요구와 30%를 주장한 한중의 이견이 끝까지 맞섰다.

선박엔진도 현대를 제외한 삼성 한진 대우가 한중과 손잡고 컨소시엄을 구성키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반도체는 외자를 50% 지분으로 유치하더라도 국내 업체가 최소한 35%의 지분을 유지, 특별결의를 할 수 있도록 통합시 대주주 지분을 70%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처럼 중공업 분야에서 일관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는 현대가 5대그룹 구조조정에서 빠짐으로써 중복과잉 설비해소와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당초 취지가 상당부분 퇴색했다.

이에 따라 현대가 빠진 나머지 그룹들의 컨소시엄에 대한 금융지원이 ‘특혜시비’로 비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손병두(孫炳斗)전경련부회장은 이 점을 의식한 듯 “양사체제가 국내외 독점시비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

▼정재계 갈등국면 조짐〓정부는 당초 10개 구조조정 대상업종을 제시, 재계가 자율적인 조정안을 내놓기를 희망했다. 지난달 9일 정재계간담회에서는 자율 구조조정안에 대해 ‘신속작업절차(패스트 트랙)’를 적용, 연내에 구조조정을 완료한다는 일정까지 잡았다.

그러나 반도체의 경우 5대그룹이 정부의 경영주체 선(先)선정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데다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기준 선정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다른 업종의 구조조정도 현대를 배제한 채 이뤄져 기대와는 동떨어졌다.

재계 불만도 대단하다. 특정업체의 경영권 포기를 강제하는 구조조정은 대외신인도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입장. 반도체의 경우 경영주체를 미리 선정해도 실사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구조조정 일정을 맞추는데 무리가 없다는 반론이다.

정부도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키더라도 시장원리에 입각해 퇴출을 결정하기엔 금융권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향후 일정〓5대그룹은 2, 3일내 항공기와 유화 철도차량(대우 한진)컨소시엄을 맡을 전문경영인을 공개 모집한다. 전문경영인은 부채비율 축소, 인력조직 감축, 외자유치 등 자구계획을 수립해 채권단에 제출할 예정. 이와 별도로 5대그룹은 그룹별 재무구조개선계획에 이번 구조조정안을 반영, 이달 15일까지 제출한다.

〈박래정·홍석민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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