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워크아웃등 「기업개혁」 제대로 되는게 없다

  • 입력 1998년 7월 15일 19시 23분


정부의 기업개혁 정책이 좌초위기를 맞았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투명성 제고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던 재벌정책이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금융권 및 재벌들의 이해와 이견이 맞물리면서 흔들리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이 주도한 부실기업 퇴출과 ‘워크아웃(기업가치 회생)’프로그램은 시행 초기부터 그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주요 그룹들은 자발적인 빅딜은커녕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자거래 조사에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양상이다.

▼효력을 의심받는 ‘워크아웃’〓워크아웃의 당초 취지는 ‘살아날 기업만 살리겠다’는 것. 채권단이 물품대금으로 발행한 진성어음은 기업이 결제하도록 하고 융통어음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결제해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15일 첫 워크아웃 대상인 고합그룹에 2천4백억원의 협조융자가 제공됨에 따라 워크아웃의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높다.

고합측은 “가동률이 40%대로 떨어진 수출용 생산설비의 원자재 도입자금으로 사용하는 만큼 국가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 그러나 이처럼 진성어음 결제에 협조융자가 동원됨에 따라 다른 워크아웃 대상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A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부실채권 증가를 우려한 채권단이 과감하게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못할 것이란 당초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며 “가뜩이나 자금시장이 경색되는 와중에 우량기업에 흘러가야 할 돈이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고 비판했다.

금감위가 제시했던 워크아웃 대상은 6∼64대 기업그룹중 16개. 그러나 경영권 박탈, 외자유치 차질 등을 우려한 기업들과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제2,3금융권의 반발로 워크아웃 대상그룹은 15일 마감때까지 3개에 불과.

▼주도세력 없는 ‘빅딜’〓재계는 4일 청와대에서 ‘자발적인’빅딜에 합의했지만 사실상 ‘물건너 간’사안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삼각 빅딜’의 당사자인 A그룹의 구조조정본부 고위관계자는 “빅딜과 관련된 어떤 지시도 아직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요 그룹의 경우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딜러’역을 맡아 줄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전경련은 빅딜기업들이 스스로 빅딜안을 들고올 경우 정부 및 채권단에 보완조치 등을 요청하겠다는 입장. 전경련 관계자는 “5대그룹 계열사 퇴출대상이 확정되기 전엔 빅딜 논의를 벌이기 어렵다”고 고민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빅딜은 기업내에도 전담팀이 없고 그렇다고 정부나 금융기관 어디에도 실무적으로 챙기는 곳이 없어 그냥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로 표류하는 형국.

▼답보상태의 ‘부당 내부거래’판정〓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주 5대 그룹의 부당내부거래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그룹이 일제히 김&장 세종법무법인 등 유명 로펌을 통해 법적소송 불사 방침을 세우자 난감해하고 있다.

공정위가 ‘메스’를 들이댄 부당거래는 ‘그룹내 부실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인수’관행. 공정위와 주요그룹이 법정공방을 벌이게 되면 부당 내부거래를 토대로 퇴출기업을 선정하려던 금감위의 개혁플랜도 차질을 빚게 된다.

▼퇴출되지 않는 퇴출기업들〓지난달 금감위로부터 퇴출판정을 받은 부실기업 55개중 현재까지 23개 업체가 퇴출이 아닌 계열사 합병을 택했다. 법인은 사라졌지만 부실사업은 그대로 시장에 남은 것. 따라서 퇴출대상 기업들의 채무 등이 고스란히 계열사에 편입돼 그룹 전체의 부실을 키우는 결과를 빚고 있다.

금감위는 퇴출기업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권의 손실분담을 요청했으나 금융권은 합병을 통해 모기업이 채무를 떠안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더욱이 통일그룹이 퇴출대상에 포함된 일화를 금융권 지원없이 소생시키겠다는 입장을 금융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퇴출판정의 권위마저 흔들리고 있다.

〈박래정·이용재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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