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관리 「빨간불」…정부,韓銀 발권력이용 18조 풀어

  • 입력 1998년 6월 3일 19시 34분


한국은행의 통화관리 수위(水位)가 넘치기 일보직전이다. 한은이 통화량 조절능력을 잃어버리면 시중에는 돈이 넘쳐 돈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과 고물가를 유발해 국가경제가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3일 한은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시중은행들이 고객의 예금 인출요구에 대비해 한은에 맡겨놓은 지급준비예치금(요지준)은 6조원, 남아도는 돈을 한은에 추가로 예치한 초과지준금은 무려 48조원에 달했다.

▼늘어나는 통화관리 부담〓한은은 통화량 조절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초과지준금만큼을 통화안정증권 환매조건부채권(RP)으로 발행, 흡수했다. 이에 따른 연간 이자부담만 8조원에 달한다. 초과지준금은 96년말 27조원에서 올 5월말 48조원으로 21조원만큼 늘어났다. 그만큼 시중통화량이 증가해 한은의 통화관리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 시중통화량이 불어난 것은 정부가 구조조정 재원조달 명목으로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 작년말 이후 18조원을 시중에 새로 풀었기 때문이다. 특히 48조원 중 36조원이 만기 15일 이내의 RP와 통안증권으로 한은에 예치돼있어 골칫거리다. 이 돈을 맡긴 은행들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기 때문.

▼초과지준이 늘어나는 이유〓한마디로 한은이 돈을 많이 풀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확충해야 하는 시중은행들이 신용경색으로 대출을 극도로 기피하는 점.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니까 한은은 통화증발을 우려해 남는 돈을 흡수한 것이고 시중은행은 안전하고 고금리 이자도 주는 ‘한은금고’에 재예치한 것이다. 시중자금을 흡수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통화증발로 금리폭락→외환시장 불안→물가폭등→인플레이션 등이 우려된다는 게 한은측의 설명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정부가 구조조정재원 50조원중 대부분을 한은에 의지할 경우 초과지준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BIS기준 자기자본비율 맞추기에 급급한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대출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 한은관계자는 “구조조정기금 채권을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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