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경제청문회④]문어발식 확장… 줄줄이 도산위기

  • 입력 1998년 2월 12일 08시 27분


87년 삼성건설 고위관계자가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찾아갔다. 충남 서산 대산면의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얻기에 앞서 인근에서 매립공사를 벌이고 있는 현대측과 사전조율하기 위해서였다. 이 바람에 삼성의 유화사업 진출 소문이 확인되자 현대는 유화투자를 그룹 역점사업으로 삼게 됐다. 산업 기초소재인 유화부문을 경쟁그룹이 장악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 두 그룹은 89년 하반기부터 대산단지에 각각 1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대한유화 LG그룹 롯데그룹 등도 7조원을 들여 나프타분해센터를 각각 건립, 세계 5위권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유화투자붐은 95년에도 재현, 올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해외시장이 위축되면서 유화산업은 자동차와 함께 산업경쟁력을 갉아먹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조짐. 내수업종인 철강부문도 업체간 경쟁적인 증설로 후유증이 심각하다. 올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날 전망이지만 내수 수출 모두 얼어붙어 있다. 조선 자동차분야에서 타 그룹의 때늦은 설비투자를 맹비난했던 현대그룹은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상황을 맞아 최근에야 투자계획을 보류했다. 유통부문도 대그룹들의 투자로 잔뜩 거품이 끼어있다. 지방 유통업체들은 현대 삼성에 이어 대우 LG 신세계 롯데 등 대그룹들의 지방출점으로 줄줄이 도산위기다. 대그룹들이 중복투자를 일삼는 것은 주력업종에서 쌓아올린 그룹 지명도를 이용, 손쉽게 다른 사업에 진출하려 하기 때문. ‘우리가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광고카피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외국의 경제전문가들로부터 ‘떼거리주의(主義)’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박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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