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살리기」에 나선 정부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기아 처리문제도 잠시 뒤로 미뤄놓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게 재정경제원의 판단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은행정상화 3단계조치」는 이같은 상황인식이 출발점. 당장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은행의 파산위기를 넘기고 내년부터 가속화할 금융개방에 대비한 금융산업 대개편에 착수한다는 게 기본골격이다. 선 응급조치―후 수술의 수순이다.
한국은행 특별융자 등 응급조치의 대상은 한보 진로 기아 등에 물린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꼽힌다.
하지만 정부 지급보증과 한은특융 등은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부실채권 정리전담 기구인 성업공사가 본격 활동에 착수하는 11월초부터 2단계 일정을 잡았다.
은행들이 원죄(原罪)처럼 떠안고 있는, 무려 9조4천억원 규모의 부실여신을 정리하지 않고는 은행들의 경영정상화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경원은 성업공사의 활약여부에 국내 금융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고 과감하게 활동영역을 터줬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물론 필요한 경우 인근지역의 부동산까지 매입하도록 허용했다. 취득 부동산이 행정 및 용도상 제약으로 매각에 차질이 있을 경우 부동산의 용도를 변경, 부동산 가치를 높여 매각하거나 개발하도록 했다. 「투기」수준의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자금을 최대한 조달하라는 특명을 내린 셈이다. 2단계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금융시장이 안정되면 이때부터 은행간 인수합병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게 마지막 진행단계다.
하지만 이같은 3단계 방안은 걸림돌도 많아 성공여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성업공사가 기대한 만큼 역할을 수행할 지가 의문이다.
대기업 부도사태가 부동산경기 침체에도 영향을 받은 것인데 성업공사가 매입 부동산을 원활하게 매각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은행들의 출연금으로 조성된 정리기금이 다시 부동산에 물리는 악순환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의 자구노력과 인수합병도 정리해고제의 시행유보가 걸림돌이다.
자구노력의 핵심인 대량감원이 현 제도하에선 불가능하고 명예퇴직 형식의 인원감축은 과다한 퇴직금지출로 단기수익성을 악화시킨다.
금융계에서 특히 은행간 인수합병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이다.
조흥은행의 한 임원은 『우량은행이 부실은행을 흡수하는 방안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둘다 망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 성공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시중은행 합병 시나리오는 외환분야가 강한 외환은행과 소매금융에 강점이 있는 국민은행의 결합정도라는 게 은행권의 중론.
그러나 외환은행 관계자는 『합병을 한 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중복점포를 모두 정리해야 하는데 이 작업만 하는데도 몇년이 걸릴지 기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내년부터 시작될 인수합병 작업은 우량은행들 사이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전문가들은 이 경우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부터 시작하는 게 합리적 수순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임규진·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