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직전 美 월스트리트 풍경
자동차-세탁기 등 기술 성장에… 신용거래로 주식시장 뛰어들어
대출-규제 완화로 급격히 붕괴… 하루 동안 1290만 주 ‘패닉 셀링’
대폭락 사태의 시작과 끝 다뤄
◇1929/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조용빈 옮김/632쪽·3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주식 대폭락 사태로 대공황의 시작을 알렸던 1929년 10월 24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인근에 모여든 투자자들. 이 책은 대폭락의 징후를 보였던 1929년 2월부터 투자시장 설계자인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이 법원 평결을 받은 1933년 6월까지를 촘촘하게 다룬다.
연일 주가가 오른다. 신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란 낙관론이 퍼지고, 우상향 신화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평범한 월급쟁이부터 무직자까지 거의 모두가 빚을 내서 주식시장에 뛰어든다.
왠지 낯익은 풍경이지만, 실은 1929년 미국. 바로 주가 대폭락이 일어나기 직전의 월스트리트 모습이다. 유토피아가 올 것 같던 당시 주식시장은 그해 10월 급격한 붕괴를 맞이했다.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미 뉴욕타임스(NYT)의 간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1929년에 주목해 오늘날의 시장이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교훈을 되짚어본 책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비공개 이사회 회의록 등을 입수해 분석하면서, 불길한 징후를 보였던 1929년 2월부터 대폭락까지의 타임라인을 소설처럼 재구성했다.
1920년대는 ‘낙관의 시대’였다. 지금 사고 나중에 갚는 ‘신용’의 개념이 미국인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현대 소비 경제가 형성됐다. 거기에 자동차, 세탁기, 라디오 같은 신기술도 잇따라 보급됐다. 기술이 가져올 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 대중은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자기 자본 10%만으로 주식을 대거 사들이는 신용거래가 유행처럼 번졌다.
이 책은 이러한 극단적 레버리지를 가능하게 했던 월스트리트의 내부자들을 주목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공격적인 투기를 주도했던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보스턴 교외 출신의 자수성가형 금융인인 그는 43세에 은행장에 올랐다. 그는 “금융업은 지나치게 신비하게 포장됐다”며 평범한 대중을 투자자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비전을 공표했다.
미첼의 구상은 소액 예금자에게 대출을 확대해 주식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선샤인 찰리’로 불릴 만큼 미래에 대한 낙관이 강했고, 승부사적 기질도 다분했다. 당시 고위험 자산으로 평가되던 전기·가스 등 신산업 기업의 채권과 주식도 판매했는데, 내셔널 시티가 안전을 보증한다는 단서가 붙자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금세 불이 붙었다.
투기적 분위기 형성에 영향을 미친 건 미첼만이 아니었다. JP모건의 파트너 토머스 러몬트는 정관계에 뇌물성 주식을 상납하며 금융 규제를 무력화했다. 월가의 트레이더 제시 리버모어는 주가 하락에 베팅해 큰 수익을 올리며 스타로 떠올랐고, 그를 추종하는 투자자가 늘면서 시장에선 한탕주의가 확산했다.
이런 쉬운 대출 위에 세워졌던 주식시장은 거품 우려 속에 등락을 반복하다가, 증권사의 계좌 청산과 매도 주문이 이어지며 급격히 붕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결국 1929년 10월 24일, 하루 동안 1290만 주가 쏟아지며 패닉 셀링이 발생했다.
거의 100년 전 얘기인데도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들까. 테크 기업들의 질주에 주식시장은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빚투’(빚내서 투자)인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34조 원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찍은 한국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터.
물론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알 수도, 장담할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는 확신이 반복될 때 같은 위기는 찾아온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월스트리트는 앞서 1907년에도 폭락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교훈으로 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됐지만 신설 기관은 체계적이지 못했고, 규제는 약했으며, 위기 앞에 정치권은 무능했다.
저자는 “1929년 대폭락은 피할 수 있었다”며 “이를 위해선 우리가 얼마나 쉽게 (역사를) 잊어버리는지 기억해야 하며,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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