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산토끼와 동거… 공존의 지혜가 껑충 뛰었다

  • 동아일보

영국의 외교 정책 전문가인 저자
팬데믹 시절 시골서 산토끼 돌보며,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안정감 느껴
야생성 잃지 않도록 이름도 안 붙여…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돼
◇산토끼 키우기/클로이 달튼 지음·이진 옮김/244쪽·1만9000원·바람북스

‘산토끼 키우기’의 저자는 시골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야생 산토끼를 키우면서, 인간이 자연과 맺을 수 있는 조심스럽고 다정한 관계를 배운다. 매일 자라는 생명에게서 경이를 발견하는 눈부신 모습이 담겼다. 게티이미지뱅크
‘산토끼 키우기’의 저자는 시골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야생 산토끼를 키우면서, 인간이 자연과 맺을 수 있는 조심스럽고 다정한 관계를 배운다. 매일 자라는 생명에게서 경이를 발견하는 눈부신 모습이 담겼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가을부터 주말이면 샛강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작은 개천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 한 쌍에 마음이 끌려서다. 사람한테 익숙해졌는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덕분에 가까이서 그들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려지고 관찰력도 최대치로 올라간다. 세상은 잠시 멈추고, 눈앞의 생명만 또렷해진다.

영국 작가 클로이 달튼이 쓴 이 에세이는 이런 ‘시간의 밀도’를 담은 책이다. 팬데믹으로 시골집에 머물던 저자는 우연히 야생의 ‘아기’ 산토끼를 만나게 된다. 이 산토끼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맺을 수 있는 조심스럽고 다정한 관계가 펼쳐진다.

저자는 시골길 한복판의 조각 잔디 위에서 성인 손바닥보다도 작은 산토끼를 발견했다. 어미가 데리러 오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쳤지만, 네 시간이 지난 뒤 돌아와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쩌면 어미는 이미 죽은 게 아닐까. 그대로 두면 차에 치이거나,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컸다. 결국 이 새끼 산토끼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인연은 시작됐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역 자연보호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더니, 그는 “수십 년 동안 새끼 산토끼 기르기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저자는 인터넷을 뒤지고, 산토끼와 관련된 책을 모조리 찾아 읽는다. 그러나 책 속에는 산토끼를 사냥하고 요리하는 법만 가득할 뿐, 어떻게 살려 키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18세기 시인 윌리엄 쿠퍼의 시에서 겨우 산토끼 먹이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저자의 태도다. 모든 개입이 섣부르지 않다. 산토끼의 야생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늘 한발 물러선다. 산토끼를 처음 집으로 데려올 때도 팔에 안아 올리지 않고, 길가의 마른 풀을 한 움큼 뜯어 몸을 감싸 양쪽에서 들어 올린다. 인간의 냄새를 묻혔다가 녀석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지중지 기르면서도 끝내 이름조차 붙이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소유하지 않겠다는 태도, 돌보지만 길들이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 결과 산토끼는 들판에서 야생의 동족과 어울리기 시작한 뒤에도 저자의 집을 찾아와 쉬고, 먹고, 잠들고, 실내에 새끼를 낳기도 한다. 인간과 야생이 경계를 넘지 않은 채 나란히 살아가는 풍경. 공존이란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정치인을 위해 일하는 정치 고문이자 외교 정책 전문가다. 주말과 공휴일도 없는 삶에, 반려동물을 키울 여유는커녕 자신의 일상조차 돌보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산토끼 키우기라는 뜻밖의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면, 여전히 미친 속도로 달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산토끼가 지닌 평온함과 안정감은 오랜 세월 그의 삶을 지배했던 속도감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대부분의 독자가 이 책을 읽더라도, 당장 새끼 산토끼를 집에 들여 키우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선선한 봄바람이 얼굴을 비비는 기분이 든다. 잠시 멈춰 서서, 작은 생명 하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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