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신춘문예 당선, 제게는 왕관만큼이나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벅찬 기쁨보다 왕관의 무게와 이름에 값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르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시조라는 밧줄에 영원히 묶여 버렸습니다. 시상을 떠올리고 그 얼개를 짜는 일에 한순간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시조는 천년을 굽이쳐 흘러온 우리 문학의 큰 강이라고 했습니다. 그 도저한 강줄기에 저도 한 방울의 물이 될 수 있도록 시의 혼을 부지런히 갈고 또 닦겠습니다. 시조 3장의 아름다운 정형 위에 시조만이 드러낼 수 있는 정갈하면서도 활달한 언어 미학을 얹고 싶습니다.
오래전 경주문예대학을 수료하고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시 합평을 할 때, 손진은 교수님이 제 시가 시조의 호흡과 가깝다고 방향을 틀어 주셨습니다. 교수님이 주신 좋은 자료와 응원, 그리고 유튜브와 독서 등을 통해 시조의 정석을 배우며 간결함 속에 큰 울림을 거느리는 시조의 매력에 빠져 오늘 이 벅찬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촘촘하게 채우지 못한 성근 행간의 여백에 덜컥, 과분한 상을 안겨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두 분 심사위원님의 결정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매진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저에게 꿈같은 기회의 장을 열어 주신 동아일보사에도 마음 담아 감사드립니다.
“점심은 알아서”, “못 가요”, “나중에”, 이런 말 다 받아준 그런 사람이 옆에 있어서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1965년 안동 출생 △경주문예대 수료, 동리목월 문예창작반 수료
수틀에 앉힌 내간체의 그림 같은 작품
● 심사평 시조
이근배 씨(왼쪽)와 이우걸 씨.올해 투고 작품에는 시조 형식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원고가 많았다. 열망에 상응하는 수준 높은 교육이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시조 현실이 가슴 아프다. 초등과 중등 과정에 시조 창작에 관한 교육과 학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여러 평생교육기관에서도 현대 시조 창작에 관한 과정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응모작 중 최종까지 우열을 다툰 작품은 ‘점묘의 사계’, ‘양파의 기원’, ‘아버지의 등’, ‘시리우스의 밤’, ‘꽃이 된 글씨체’ 5편이었다. ‘점묘의 사계’는 단시조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같은 응모자의 다른 작품 ‘그림시’에서의 시도 또한 주목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사유의 깊이 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다. ‘양파의 기원’은 적절한 발상과 시조 형식을 원용해서 만들어내는 결구의 매무새가 믿음직스러웠지만 신춘에 펼쳐 놓기에는 조금 어색하고 부족함을 느꼈다. ‘아버지의 등’은 가정을 이끌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힘 있고 건강한 메시지로 그려냈지만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시리우스의 밤’은 적절한 서정성과 재치 있는 문장으로 개성적인 매력을 보여 주었다. ‘꽃이 된 글씨체’는 노년의 서사를 잘 표현해낸 시조였다. 이 두 작품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하다가 수틀에 앉힌 내간체의 그림 같은 김순호 씨의 ‘꽃이 된 글씨체’에 영광을 돌리기로 최종 결정했다. 아울러 그의 다른 작품들 또한 이 결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며 시조시인으로서 대성하길 기대하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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